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쿠팡 뉴욕증시 상장, 걸림돌도 있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15 08:52

수정 2021.02.15 09:24

美 증시 차등의결권 매력적 
성공하면 한국 벤처의 쾌거 
제2, 제3의 쿠팡 이어질 것 

창업주 김범석 29배 의결권
너무 높으면 시장 반감 불러 
실패한 위워크가 반면교사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쿠팡은 창업주 김범석에게 29배 차등의결권을 줄 계획이다. 사진은 부천 쿠팡 물류센터의 모습./사진=뉴스1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쿠팡은 창업주 김범석에게 29배 차등의결권을 줄 계획이다. 사진은 부천 쿠팡 물류센터의 모습./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전자상거래업체 쿠팡이 12일(미국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 신청서를 냈다. 월스트리트저널지는 쿠팡 IPO가 2014년 알리바바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걸로 예상했다.
평가 가치는 500억달러(55조3500원)로 추산된다. 왜 쿠팡은 국내 증시를 마다하고 태평양 건너 뉴욕으로 갔을까. 과연 쿠팡은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에 성공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의문을 풀어보자.

왜 뉴욕으로 갔나

차등의결권 또는 복수의결권이 결정적으로 보인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차등의결권(Dual Class Voting Rights)을 허용한다. 반면 한국거래소(KRX)는 차등의결권 금지다. 상장 뒤 쿠팡 주식은 클래스 A와 B 두 종류로 갈린다. A주식은 1주당 1의결권, B주식은 1주당 29의결권을 준다. 창업주 김범석이 가진 주식에 29배 의결권을 주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김범석은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다.

쿠팡이 뉴욕으로 간 것이 오로지 차등의결권 때문만은 아니다. 테슬라 요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적자 기업이라도 성장성이 뛰어나면 예외로 상장을 허용하는 제도다. 2010년 출범한 쿠팡은 여전히 적자다. 일본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과감하게 투자한 덕에 버텨왔다. 한국도 2017년부터 테슬라 요건을 도입했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에서 보듯 국내 증시에서 특례 상장은 피하는 게 좋다. 뒷말을 낳기 십상이어서다.

향후 세계무대 진출을 고려해도 코스피, 코스닥보다는 뉴욕 증시가 낫다. 외국 기업과 접촉할 때 뉴욕 증시 상장사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힘을 발휘한다. 좁은 한국 시장을 벗어나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도 쿠팡이 뉴욕으로 간 것은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쿠팡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신청서. 주당 29의결권을 주는 클래스B 주식에 대한 내용이 보인다.(자료=SEC 웹사이트)
쿠팡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신청서. 주당 29의결권을 주는 클래스B 주식에 대한 내용이 보인다.(자료=SEC 웹사이트)


쿠팡 IPO에 걸림돌은 없나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창업주 김범석에게 29배 의결권을 주는 클래스B 주식을 발행한다는 내용이다. 10배도 아니고 29배는 지나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창업주에 대한 특혜가 필요하다는 걸 부인하게 아니다. IPO를 거치면서 지분율이 쪼그라들면 경영권을 걱정하느라 혁신을 게을리하게 된다. 차등의결권은 이를 예방하는 장치다. 경영권을 보장할 테니 오로지 혁신에 힘쓰라고 격려하는 차원이다. 기업이 장기 성장 전략을 펴고, 적대적 인수합병(M&A)를 방어하는 데도 차등의결권이 요긴한다.

그러나 특혜가 지나치면 반감을 산다. 차등의결권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다. 반대하는 쪽에선 창업자의 독단 경영을 우려한다. 오너를 견제할 세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차등의결권은 1주 1의결권이라는 시장경제의 대원칙을 허문다. 언제든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일까, 일부 주가지수는 차등의결권을 적용한 기업을 아예 명단에서 뺀다.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500 지수와 FTSE 러셀 지수가 대표적이다. FTSE 러셀은 런던증권거래소의 자회사로 인덱스를 만들고 관리한다.

공유경제(오피스)의 선두주자인 위워크가 반면교사다. 위워크는 2019년 8월 뉴욕 증시에 기업공개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를 들여다 본 투자자들은 두 가지 점에서 깜짝 놀랐다. 먼저 만성적자로 인한 수익성 개선에 의문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창업주 애덤 노이먼에게 의결권 20배짜리 슈퍼의결권을 준다는 내용이다. 통상 스타트업 IPO 때 창업자들은 10배 수준의 차등의결권을 받았다. 노이먼은 두 배를 요구했다. 게다가 노이먼은 마리화나 흡연 물의를 빚는 등 자질 논란까지 불렀다. 결국 위워크는 기업 가치가 뚝뚝 떨어지면서 IPO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쿠팡은 김범석에게 29배 슈퍼의결권을 주기로 했다. 뉴욕 증시 투자자들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쿠팡은 아직 적자 기업이다. 쿠팡의 IPO 프로젝트는 아슬아슬한 구석이 없지 않다.

쿠팡이 SEC에 제출한 실적 그래프 (자료=SEC 웹사이트)
쿠팡이 SEC에 제출한 실적 그래프 (자료=SEC 웹사이트)


정부, 정치가 할 일

왜 한국 증시를 버렸냐고 쿠팡을 탓하지 말자. 낡아빠진 국수주의일 뿐이다. 서학개미들은 뉴욕 증시 상장사인 테슬라, 게임스톱을 마치 국내 주식 거래하듯 투자한다. 디지털 혁신 덕이다. 머잖아 쿠팡이 ‘CPNG’ 심볼로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 테슬라 주식을 사고 팔 듯 쿠팡 주식을 사고 팔면 된다.

대신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 있다. 벤처에 한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약으로 발표했다. 1주 1의결권을 규정한 상법 369조 개정이 관건이다. 반기업법은 번갯불에 콩을 볶는 민주당이 친기업법은 미적대기 일쑤다. 대기업은 빼고 스타트업에만 주는 혜택이니 명분도 선다. 더이상 미루지 않길 바란다.

대신 부작용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줄일 수 있다. 먼저 차등의결권 부여 기간을 제한할 수 있다. 이를테면 10년 동안만 인정하는 것이다. 배수를 10배 또는 5배 이내로 제한할 수도 있다. 창업주가 주식을 팔거나 상속하는 즉시 의결권 혜택을 박탈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형태이든 차등의결권을 도입해야 될성부른 우리 스타트업이 기업공개를 위해 뉴욕, 홍콩, 싱가포르로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있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구글은 2004년 기업을 공개하면서 A,B,C 3종의 주식을 발행했다. 이를 통해 창업주인 래리 페이지아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조용히 지배한다. (사진=fn뉴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구글은 2004년 기업을 공개하면서 A,B,C 3종의 주식을 발행했다. 이를 통해 창업주인 래리 페이지아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조용히 지배한다. (사진=fn뉴스)

※차등의결권의 역사와 사례


차등의결권은 선진국 증시에서 100년 역사를 지닌 제도다. 1925년 미국 자동차 회사 닷지 브라더스가 처음 시도한 걸 효시로 친다. 당시 닷지 브라더스는 1억3000만달러 규모의 채권과 우선주, 무의결권주를 공모했다. 그런데 소유주인 투자은행 딜론 리드 앤 컴퍼니는 겨우 225만달러를 투자해 닷지 브라더스를 소유했다. 그러자 시장에서 IPO 계획이 일반투자자에게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터졌다. 만에 하나 회사가 망할 때 위험 부담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논란 끝에 뉴욕 증시는 차등의결권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고, 1940년에 공식 금지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1980년대에 부활했다. 벤처 대박 기업을 유치하려는 글로벌 거래소 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2014년 중국 알리바바가 홍콩 대신 뉴욕을 간 것도 당시 홍콩 거래소에 차등의결권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홍콩은 2018년에 부랴부랴 차등의결권을 허용했고, 같은 해 싱가포르가 뒤따랐다. 한국은 차등의결권 카드를 몇 년 째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기업이 차등의결권을 적용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1956년 포드자동차가 포드 가문에 의결권 40%를 주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 실제 지분율은 4%에 불과하니 10배를 준 셈이다. 뉴욕 증시는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했다.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더웨이도 A, B 두 종류의 주식이 있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B주식의 의결권은 A주식의 1만분의 1에 불과하다. B주식은 약 14억주가 유통되는 반면 A주식은 약 71만주에 불과하다. 자연 가격은 하늘과 땅 차이다. A주는 36만5000달러(약 4억원), B주식은 242달러(약 27만원)이다.

벤처 신화를 이끈 구글이 차등의결권 제도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2004년 공모에서 구글은 3종의 주식을 발행했다. A는 일반투자자용, B는 창업자와 임원용, C는 종업원용이다. B주식은 10배 의결권을 준 반면 C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이를 통해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을 조용히 지배한다.

벤처만 차등의결권 혜택을 누리는 건 아니다. 스웨덴의 삼성이라 불리는 발렌베리그룹 가문은 인베스터AB라는 지주사를 통해 계열사를 통제한다. 스톡홀름 증시 상장사인 인베스터AB는 주식이 두 종류다.
A주식은 의결권 1주, B주식은 10분의 1을 준다. 발렌베리재단은 10배짜리 차등의결권 덕에 인베스터AB의 의결권 지분 57%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스웨덴은 아무 소리 없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쿠팡 뉴욕증시 상장, 걸림돌도 있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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