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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시평] 쌍둥이 배구자매가 쏘아올린 스포츠 폭력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22 18:00

수정 2021.02.22 19:59

[fn시평] 쌍둥이 배구자매가 쏘아올린 스포츠 폭력
배구선수 이다영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평소 눈에 띄긴 했다. 발랄하고 당당한 태도와 거침없는 행동들은 기본이다. 수비하다가 넘어지면 코트에 드러눕기도 한다. '태국의 세계적인 배구선수인 눗사라를 꿈꾼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읽고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됐다. '꿈이 있는 선수구나.' 이 사건이 있기 전에는 그 꿈이 이뤄지기를 응원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응원하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 학교폭력 가해자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배구선수 이다영과 이재영 선수 이야기다.

승승장구하던 그녀들 앞에 얼마 전 사건이 발생했다. 10년 전 폭력 피해자가 나타난 것이다. 동급생을 칼로 협박하고 부모님을 욕보였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학생들이 철없이 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매우 섬뜩하다. 더 문제가 된 것은 SNS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올린 글에서 보이는 위선과 가면이다. 정작 피해자는 고통과 모멸감을 잊지 못해 아픔 속에서 살고 있는데 가해자는 반성이나 사과 없이 아무렇지 않게 거침없이 사는 모습은 대중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들이 받는 고액 연봉 10억원의 무게만큼이나 이번 사건의 파급은 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 체육계에서는 새로운 폭력 사건들이 매일 폭로되고 있다. 관련 기사에는 보통 수천개의 댓글이 달린다. 댓글을 보면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다수가 원하는 것은 강력한 처벌이다. 현재의 상황만 모면하겠다는 면피용 보여주기식 징계나 무기한 출전정지가 아니라 다시는 프로에서 뛰지 못하게 하고, 지도자는 물론이고 국가대표 자격을 영구 박탈하도록 강력 성토하고 있다. 대중이 이렇게 분노하는 것은 인성도 문제이지만 그녀들이 그동안 받은 대우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국회에 보낸 서면답변서에 대한체육회가 가해자를 걱정하는 투의 부적절한 답변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인권의식과 공정성에 대한 요구는 이렇게 향상됐는데 체육계 지도자들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작년에 전국 5274개 초·중·고 선수 6만3211명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4.7%(8440명)가 선배나 지도자로부터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을 당한 학생 선수 중 79.6%는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거나 신고하지 못했다.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24.5%로 가장 많았다.

지인 중에 축구선수가 있다. 프로축구 감독까지 지냈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진짜 많이 맞으면서 운동을 하나요?" 그는 "안타깝지만 그런 편이에요. 지도자마다 다르기는 한데 저는 운 좋게 안 맞았어요"라고 답했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똑같은 행동들이 모방되고 전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폭력행위를 한다면 체육계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의식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실력과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용서되는 분위기나 폭력을 관행으로 치부하거나 '나도 맞고 운동했으니 너희들도 맞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국민은 폭력 가해자들이 국가를 대표해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보다 성적은 낮더라도 폭력 없는 사회, 폭력 없는 학교를 원하고 있다. 제도개선을 위해 그 누구도 결코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꿈나무들을 위해 체육계가 결단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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