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증세 말한 이재명, 눈에 확 띈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22 18:00

수정 2021.02.23 08:17

기본소득용 한계는 있지만
논의 물꼬를 튼 것만도 대단
증세 성역 사이다처럼 깨길
[곽인찬 칼럼] 증세 말한 이재명, 눈에 확 띈다

경제사령탑 홍남기가 틀렸다. 재정은 화수분이다. 국채만 찍으면 재물이 줄창 나오는 보물단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주말 민주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위로 지원금, 국민사기 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온 국민이 으쌰으쌰 힘내자는 차원에서 국민을 위로하고 동시에 소비도 진작시키는 목적의 지원금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만 들어도 힘이 솟는다.
으쌰으쌰.

4차 재난지원금? 아, 물론 그것도 준다. 문 대통령은 "최대한 넓고 두텁게 지원되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민주당에선 1인당 300만원 이상 얘기가 오간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전에 틀림없이 나온다. 넓고 얇게가 아니라 넓고 두텁게라니 키다리 아저씨가 따로 없다.

지난해 정부는 4차례 추경으로 모두 60조원 넘는 예산을 더 짰다. 올해는 4차 재난지원용으로 10조~20조원 규모의 1차 추경 논의가 진행 중이다. 화수분을 관리하는 홍 부총리만 속이 탄다. 지난주 국회 업무보고에서 홍 부총리는 "당장 내년(2022년) 국가채무 비율이 50%를 넘고, 중기재정계획 말기(2024년)에는 60%에 육박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래봤자 소용없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권에 홍 부총리의 하소연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한국 정치판에도 증세라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가뭄에 콩 나듯 있다는 점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달 초 언론과 인터뷰에서 "벌써부터 증세를 얘기하는 것은 놀라운 상상력"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윤후덕 의원(민주당)은 지난주 홍 부총리를 상대로 "재정당국에서도 지금쯤은 증세방안을 공론화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앞서 같은 당 이원욱 의원은 부가세율 한시 인상을 제안한 적이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내가 진짜 놀란 사람은 이재명 경기도 지사다. 이 지사는 지난 7일 페이스북에서 "낮은 조세부담률을 끌어올려 저부담·저복지 사회에서 중부담·중복지 사회로 가야 한다"며 "이를 위한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깜짝 놀라서 이 지사의 글을 몇 번 읽었다. 이재명은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린다.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이 정치인의 무덤이라는 증세 이야기를 꺼냈다. "대다수 국민은 내는 세금보다 돌려받는 기본소득이 더 많은 기본소득목적세를 이해하면 증세에 반대하기보다 오히려 찬성할 것"이라고 대담한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맞다. 기본소득 찬반을 떠나, 더 많은 복지를 누리려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삼척동자도 아는 이 명제가 한국 정치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저 화수분인 양 재정을 파먹기만 한다. 사실 이 지사도 당장은 재정을 팍팍 쓰자는 쪽이다. 적자 재정을 놓고 홍 부총리와 얼굴을 붉힌 적도 여러번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재명식 증세론이 더 눈길을 끈다. 한계는 있다. 그가 말하는 증세는 어디까지나 기본소득 재원용 장기 대책이다. 그럼에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증세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 지사는 사이다로 통한다. 어떤 후보도 흉내낼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다.
유권자를 상대로 고통 분담을 호소하는 증세는 이재명의 공약이 맹탕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 기회다. 식은 사이다만큼 밍밍한 맛도 없다.
이 지사가 증세 성역을 시원하게 깨는 모습을 보고 싶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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