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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특급논설] 재정중독에 빠진 文정부

역대 정부와 비교할 때
국가채무 상승폭 역대급
키다리아저씨 정권 행세

코로나위기는 핑계 안돼
외환위기·금융위기 때도
재정건전성 사수에 진력

나라 장래를 염려한다면
곳간 채울 방도도 세워야
과감한 증세 기반 다지길



[곽인찬의 특급논설] 재정중독에 빠진 文정부
당정청은 2월 28일 협의회를 열어 19조5000억원 규모의 4차 재난지원금과 지원 대상을 사실상 확정했다. 기존 예산에서 모자라는 돈은 국채를 찍어 조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중독증은 집단 현상이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정세균 총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 남았다. 사람들은 장차 문재인 하면 뭐부터 떠올릴까. 경제에 묻혀 살아서 그런가, 난 재정중독이 떠오를 것 같다.

문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들은 그가 한국을 '대네수엘라'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한다. 남미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 포퓰리즘의 극치를 달렸다. '대네수엘라'는 대한민국+베네수엘라의 합성어다. 하지만 지나친 비유다.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여전히 짠돌이로 통한다. 국가채무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이런 나라를 베네수엘라에 비유하는 것은 다분히 정략적이다.

그럼 재정중독이란 말도 정략적인가? 그렇지 않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곽인찬의 특급논설] 재정중독에 빠진 文정부
(자료=e-나라지표)


재정정책은 욕 먹어도 싸다


e-나라지표는 정부가 제공하는 공식 지표다. 여기에 국가채무 시계열 통계가 있다. 1997년부터 2024년까지 28년치 수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정권별 국내총생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보자.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정부에서 국가채무 비율 15.3%를 물려받아 19.8%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넘겼다. 4 5%포인트 높아졌으나 단군 이래 최대 경제참사인 외환위기를 고려하면 선방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19.8%를 받아 26.8%를 이명박정부에 넘겼다. 7%포인트 올랐으니 꽤 높아진 셈이다. 다만 28.1%(2006년)까지 오른 수치를 임기말 27% 밑으로 다시 끌어내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26.8%를 받아 32.6%를 박근혜정부에 넘겼다. 5.8%포인트 높아졌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변수를 고려하면 김대중정부와 마찬가지로 선방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32.6%를 받아 36%를 문재인정부에 넘겼다. 4년 재직하는 동안 3.4%포인트 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재정 관리만큼은 욕 먹을 일이 없다.

문 대통령은 36%를 받아 51.4%(2022년)를 후임자에게 넘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자그마치 15.4%포인트 높아진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상승폭이 두자리수를 기록할 게 틀림없다. 만약 앞으로도 작년처럼 추경을 밥 먹듯이 하면 더 높아진다. 올해 추경을 안 짜도 국가채무 비율은 2024년 58.7%로 치솟는다. 이런 추세라면 60% 돌파는 시간문제다.

이러니 재정중독 비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은 4차 재난지원금을 넓고 두텁게 주라고 당부했다. 당정청은 2월28일 협의회에서 자영업자·소상공인 외에 특수고용노동자와 노점상 등 200만명을 지원 대상에 새로 포함시켰다. 지원금 규모는 19조5000억원에 이른다.

정세균 총리는 "한마디로 이번 추경은 이낙연표 추경"이라며 "큰 열정으로 열심히 '푸시'를 해 주셔서 우리가 합의에 이르렀다"고 이 대표를 추켜세웠다. 이 대표는 정 총리의 칭찬에 머리 숙여 답례했다. 대통령도 총리도 당 대표도 다 재정중독이다. 마치 키다리 아저씨 정권 같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혼자 견딜 재간이 없다. 하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는 홍 부총리의 발언도 가만히 보면 언론용이라는 느낌이 든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재정중독에 빠진 文정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수차례 정치권에 맞서 곳간지기 역할을 자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홍 부총리 재임 중 국가채무 비율은 역대급으로 높아졌다./사진=뉴스1


재정을 이렇게 허문 정부는 처음

노 대통령은 조세부담률이 선진국 클럽인 OECD 평균보다 낮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재정을 허물지는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조세부담률은 16~18% 수준에 머물렀다. 조세부담률은 경상GDP에서 국세+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집부자를 겨냥해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했다. 주목적은 집값을 잡는데 있었지만 세수 측면에선 재정에 보탬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감세 정책을 폈다. 종부세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다. 이 통에 세수가 시원찮았다. 그 대신 이명박정부는 나랏돈을 자린고비처럼 썼다. MB정부 세번째이자 마지막 기재부 장관인 박재완은 재정투사를 자처했다. 박 장관은 어떻게든 국가채무 비율을 30% 밑으로 다시 끌어내리려고 애를 썼다. 이 작업은 실패했지만 재정건전성을 사수하려는 박 장관의 투철한 자세는 언론의 칭송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당 출신답게 재정을 아껴 쓰는 한편 세원 확보에도 눈길을 돌렸다. 2013년 연말정산 파동이 대표적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한 게 발목을 잡았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꼼수는 '거위털 뽑기' 논란 속에 조세저항을 불렀다. 대통령의 꾸지람 속에 기재부는 연말정산 개편안을 수정했으나 백지화하지는 않았다. 결국 연말정산 수정 개편안은 세수에 보탬이 됐다. 2015년 담뱃값을 배 가까이 올린 것은 명백한 증세다. 당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리면 연 3조원 가까운 추가 세수가 나올 걸로 예상했다. 실제론 그보다 더 걷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증세를 했다. 정권초 소득세 최고세율을 42%로 올리고, 대기업 법인세율은 25%로 환원했다. 이어 종부세율도 올렸다. 재산세율은 그냥 놔뒀지만 대신 공시가격을 올려 실질적인 세수 증대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문 정부가 워낙 돈을 물 쓰듯 하고 있어서다. 부자증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모자라면 거리낌 없이 국채를 찍는다. 그러면서 미안한 척도 안 한다는 게 문제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금융위기도 코로나급 충격을 몰고 왔으나 지금처럼 재정 둑이 스르르 무너지진 않았다. 사실 문 정부는 다른 건 몰라도 재정만큼은 박근혜정부에 고맙다고 해야 한다. 말 많고 탈 많은 증세 덕에 세수는 2018년까지 수년 간 호황을 누렸다. 문 정부 2년차인 2018년의 경우 국세는 예상보다 무려 25조원이 더 걷혔다. 문 정부는 이 돈을 신나게 썼다. 하지만 세수 호황은 2019년 세수 펑크로 바뀌었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재정중독에 빠진 文정부
/사진=뉴스1

짠돌이 재정이 다 옳은 건 아니지만

나는 짠돌이 정부가 무조건 옳다고 보지 않는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처럼 굴어봤자 본인도 불행하고 이웃도 괴롭다. 개인도 기업도 갚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빚을 낼 수 있다. 집 사고 차 사는데 빚 안 끼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기업도 한창 클 땐 과감하게 빚을 낸다. 잘만 굴리면 빚도 재산이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양극화 고질병이 있다. 사회안전망도 영 성글다. 돈을 왕창 풀어서라도 복지 기반을 든든히 쌓는 게 꼭 나쁜 전략은 아니다. OECD처럼 권위 있는 해외 기관들도 틈만 나면 우리더러 재정을 더 풀라고 성화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D2)는 GDP 대비 42.2% 수준이다. 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 6번째로 낮다. D2는 중앙정부·지방정부 부채에 국민연금 같은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합한 개념이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재정중독에 빠진 文정부
정치권에선 민주당 일부 의원과 이재명 경기 지사를 중심으로 증세론이 솔솔 나온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증세에 대해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내년 봄 대선을 앞두고 증세는 정치생명을 건 모험이다. /사진=뉴스1

누울 데를 보고 발을 뻗자


하지만 돈을 쓰더라도 전제조건이 있다. 양심이 있다면 재원을 추가로 조달하는 방안을 같이 찾아야 한다. 무작정 신용카드를 긁으면 결국 파산이다. 씀씀이를 줄일 수 없다면 유일한 방안은 증세다. 그런데 문 정부는 증세라면 손사래부터 친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장기적으로 담뱃세를 더 올릴 수 있다는 계획을 내놨다. 아하, 문 정부도 박근혜정부처럼 담뱃세를 올리려는 모양이구나 했다. 그런데 복지부는 바로 그런 게 아니라고 황급히 해명했다. 정세균 총리는 "담배가격 인상과 술의 건강증진부담금 부과에 대해 정부는 전혀 고려한 바가 없으며 추진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증세할 수 있는 용기만 보면 문 정부는 박근혜정부만도 못하다. 이런 태도라면 보편 증세는 물 건너 간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문 정부를 기다리는 것은 재정을 망친 정부라는 오명이다. 올 봄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내년 봄엔 대선이라 어쩔 수 없다고? 언제 증세에 알맞은 타이밍이 있었던가. 증세는 타이밍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오히려 임기 막판이 부담없이 증세를 추진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닐까. 마침 민주당 안에서도 증세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5년 단임제라고 하지만 재정만 보면 정권마다 나름 제 몫을 했다. 이제 문 정부가 자기 몫을 할 차례다. 1년 뒤 후임자를 위해 설거지를 하고 떠나는 게 도리다.
그래야 새 정부가 산뜻하게 출발한다. 안 그러면 양심불량이다. 재정을 망친 대통령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서두르는 게 좋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재정중독에 빠진 文정부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