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모든 것은 정책의 산물이다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07 18:00

수정 2021.03.07 18:00

[강남시선] 모든 것은 정책의 산물이다
'국민 주거안정의 보루'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달 발표된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에서만 13명의 직원이 2년 넘게 치밀한 투기에 나선 정황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LH가 내건 '든든한 국민생활 파트너'라는 구호가 무색해졌다. 변창흠 장관도 취임 60여일 만에 벼랑 끝에 몰렸다. 땅 투기 의혹의 절반은 변 장관이 LH 사장 재직 시 벌어진 일들이다. 그가 취임과 동시에 사활을 걸었던 '특단의 공급대책'도 좌초 위기까지 나온다.
대통령까지 성역 없는 조사를 명한 마당에 대상인 공직자만 3만명이 넘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이들 가운데 투기 의혹자가 100명일지, 1000명일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사태의 쟁점은 두 가지다. 우선, LH 연루 직원들이 신도시 지정 정보를 사전에 인지했는지다. 또 하나는 설사 기밀 정보를 몰랐더라도 공공기관 직원이 훗날 개발이익을 위해 토지를 매입한 행위 자체의 정당성 여부다. 전자는 사법처리와 관련된 사안이다. 후자는 법망을 피하더라도 도덕적 해이나 공직기강 문제가 걸린다.

이래저래 '공정하고 투명한 세상'을 전가의 보도로 여겼던 현 정권엔 뼈아프다. 어떤 면에선 현 정부의 규제 일변식 부동산 정책이 자충수가 됐는지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의 핵심 인사들은 집을 '사는(buy) 곳'이 아닌 '사는(live) 곳'을 만들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부동산, 특히 '집'에 대한 인식은 역주행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부동산 과열은 문 대통령의 공약에서 예견됐다. 대선 후보 시절 부동산을 통한 이익을 '불로소득'으로 규정하고 공공 주택론자들을 중용했다. 그들은 정권 내내 규제의 칼춤을 췄다. 25번의 대책을 땜질하듯 내놨다. 집값 잡겠다며 내놓은 정책은 되레 집값 부양의 불쏘시개가 됐다. 전세 안정을 목표로 둔 새 임대차법은 단기간 전세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고점자 외에는 수도권에서 청약 도전은 바보짓이 된 세상이다.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민간 분양은 대출 규제로 현금부자나 그들 자녀의 전유물이다. 서민들은 폭등한 전월세에 정처없이 둥지를 떠나는 신세다.

'웃픈' 이야기도 들린다. 최근 강남 고가 주택 소유자는 "현 정권은 정말 싫지만 정권 교체는 솔직히 안바란다"라고 고백했다. 참여 정부 시절 급등한 집값이 보수정권이 집권하자 보금자리주택 등 공급 최우선 정책으로 속절없이 떨어진 학습효과 때문이다. 자산의 가치가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는 세상인 듯싶다. 이쯤이면 한국인을 자산 증식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호모 프로퍼티안(homo propertian)'으로 불러도 되겠다.

요즘 주가가 높은 MZ세대 사이에서도 집에 대한 인식은 묘하게 갈린다. 사회생활 10년 전후인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은 패닉바잉(공포매수)의 진앙지로 여겨진다. 이들은 서울이나 적어도 서울 근교에 집을 마련하는 게 최대 목표다.
반면, 사회초년생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은 '서포자'(서울에서 집 마련을 포기한 자)가 속출한다. 나름 사회적 기반을 쌓은 40대 중반 이후부터 50대는 집없으면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 찍힌다.
모든 게 부동산 정책의 산물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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