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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특급논설] 박영선의 놀라운 무신경

'피해호소인 3인방' 중용은
4·7 보선의 본질을 훼손 
잠깐 판단착오라면 다행
속마음이라면 진짜 문제 
잘못 인정하고 바로잡길  


[곽인찬의 특급논설] 박영선의 놀라운 무신경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우상호·조정훈 공동선대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선거 사무소에서 열린 '합니다! 박영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영교 의원, 안규백 상임선대위원장,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박영선 후보, 우상호 공동선대위원장, 기동민 집행위원장./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님, 저는 무당파입니다. 4·7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그저 1000만 시민들, 특히 서민의 삶이 한껏 펴지길 바랄 뿐입니다.

2004년 정계에 입문하셨고 '삼성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셨죠? 그거 쉬운 거 아닙니다. 아무리 국회의원이라도 한국 땅에서 삼성과 맞서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참 잘 하셨어요. 작년 12월 중기부 직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10명 중 7명이 장관님과 계속 일하고 싶어한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서울시장에 나가지 말라는 의견도 있었다죠? 이 정부에서 이런 인기 짱 장관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최근 두 가지 점에서 후보님께 실망했습니다. 먼저 3선의 남인순·진선미 의원을 박영선 캠프의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영입하고, 초선 고민정 의원을 대변인으로 임명한 겁니다. 아니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도대체 4·7 보궐선거가 왜 열리는 겁니까? 박원순 전 시장을 둘러싼 성희롱 사건이 원인입니다. 후보님의 무신경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안철수 후보(국민의당)는 즉각 "양심이 있으면 '피해 호소인 3인방' 남인순, 진선미, 고민정을 캠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후보님의 대답은 "가부장적인 여성 비하 발언을 듣고 몹시 우울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였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이건 달을 가르키는데 손가락을 두고 시비를 거는 격입니다. 후보님이 4·7 보선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사뭇 걱정입니다.

시계추를 돌리면, 작년 7월에 박원순 시장이 사망했고, 성희롱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민주당은 '피해 호소인'이란 희한한 용어를 앞세워 박 전 시장을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남인순 의원은 서울시 젠더특보에 전화를 걸어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논란 끝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에 나섰고, 올 1월25일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튿날 남인순 의원은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피해자에게 깊이 사과 드린다"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남 의원은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해 정치권이 피해자의 피해를 부정하는 듯한 오해와 불신을 낳게 했다"고 반성했습니다.

후보님 자신도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피해 여성께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사과를 제가 대표로 대신 드린다"며 "피해자 분께서 조속히 일상으로 돌아오실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엇박자가 또 있을까요? '피해 호소인 3인방'을 캠프에 들여놓고 피해자의 일상 복귀를 바란다니요?

인권위는 "2차 피해는 성희롱에 동반되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성희롱 못지않게 중요하거나 노동권 측면에서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후보님의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시적인 판단 착오라면 차라리 괜찮습니다. "아차, 내가 실수했다, 바로잡겠다"고 하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 '3인방' 중용이 속마음을 드러낸 거라면 진짜 실망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남·진 두 의원을 불러 공동선대본부장에서 내려오도록 양해를 구하기 바랍니다. 캠프의 얼굴인 고 대변인은 당장 바꾸는 게 좋습니다.

'3인방' 세 분도 참 그렇습니다. 4·7 보선의 본질을 안다면, 박 후보의 제안을 거절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요? 남 의원은 1월 입장문에서 "저의 짧은 생각으로 피해자가 더 큰 상처를 입게 됐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보선 캠프 참여가 피해자에게 또다른 상처라는 생각은 안 드시는지요? 지금이라도 세 분이 자진해서 내려오면 박 후보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한 후보님의 관훈클럽 답변(11일)도 실망입니다. "제 생각이 있다"면서도 "서울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해가며 진행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애매모호 그 자체입니다. "지금 우리 환경은 후보의 말을 선거에 이용하는 상황이 더 강하기 때문에…"라고 말을 흐리기도 했습니다. 선거가 뭡니까? 후보의 소신을 듣고 유권자가 판단하는 자리 아닌가요? 후보가 소신을 감추면 유권자는 뭘 보고 투표해야 하나요?

박원순 전 시장은 퀴어축제를 서울광장에서 여는 걸 허락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성소수자 이슈만 보면 박 전 시장은 진보의 선두주자란 평가를 받을만 합니다. 대조적으로 후보님은 진보의 가치를 당당히 드러내기는커녕 표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퀴어축제를 여는 게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LGBTQ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천차만별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무지 많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후보님이 진보 정당을 대표하는 후보답게 행동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경쟁자인 오세훈 후보(국민의힘)와 안철수 후보는 19일 단일화 결과를 발표합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오세훈이든 안철수든 단일화 후보가 박영선 후보에 앞서는 걸로 나옵니다. 박 후보님, 4·7 보선이 앞으로 꼭 26일 남았습니다. 멋진 승부가 펼쳐지길 바랍니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박영선의 놀라운 무신경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