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늪에 빠진 부동산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15 12:49

수정 2021.03.15 13:08

움직일수록 더 빠져
4년 내내 허우적 
방향 잘못 잡으면
무얼 해도 헛수고


사의를 표명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후속조치 관계장관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변 장관의 사의 표명으로 2.4 대책은 공중에 붕 떴다./사진=뉴시스
사의를 표명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후속조치 관계장관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변 장관의 사의 표명으로 2.4 대책은 공중에 붕 떴다./사진=뉴시스


※이 글은 필자가 제멋대로 구성한 풍자임을 밝힙니다.
[파이낸셜뉴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의를 표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뜻을 수용했다. 단 2·4 부동산 대책은 기초작업까지는 해놓고 가라는 단서를 달았다. 궁금한 게 많아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부탁합니다

“지금 기분이 좋지 않으세요. 나중에 다시 걸어주세요.”

-왜죠?

“양산 사저 일로 골이 많이 나셨어요. 사람들 참, 너무 좀스러워요. 아니 물고 늘어질 게 따로 있지, 아무리 4·7 보선이 코앞이라도 금도를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예전에 민주당이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를 물고 늘어졌으니 쌤쌤이라는 얘기도 있던데요?

“아니 어떻게 이걸 그거랑 비교해요? 그땐 특검까지 했다구요. 설마 우리 정부가 역대 가장 깨끗한 정부, 권력비리 제로 정부라는 걸 모르시는 건 아닐테죠?”

-아 눼. 잘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변 장관은 어떡하실 건가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본인이 그만 둔다고 했으니 그만 둬야죠."

-변 장관 나가면 부동산 정책 기조가 바뀔까요?

“턱도 없는 소리. 우리 정부가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걸로 아는데요."

-오히려 거꾸로 아닌가요? 부동산이 지지율을 갉아먹는 주범….

“누가 그래요? 임기말 지지율이 현 대통령보다 더 높은 전임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이 정부가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엄숙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네. 저도 엄숙히 받아들이는 바입니다. 변 장관 후임 얘긴 있나요?

“때 되면 발표할 테니 애들처럼 보채지 마세요. 아, 대통령님이 찾으시네요. 그럼 이만 바빠서. 툭.”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를 조건부로 받아들였다. 문 대통령은 "변 장관 주도로 추진한 공공주도형 주택공급 대책과 관련된 입법의 기초 작업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를 조건부로 받아들였다. 문 대통령은 "변 장관 주도로 추진한 공공주도형 주택공급 대책과 관련된 입법의 기초 작업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


아무래도 본인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싶어 변 장관한테 전화를 넣었다.

-안녕하세요, 장관님.

“누구 놀리세요? 안녕하지 못합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에효,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위에서 나가라면 나가야죠. 언론은 벌써 저더러 시한부다, 식물이다 이러네요. 공수래 공수거, 맘을 다 비웠어요."

-대통령님이 2·4 대책을 ‘변창흠표’라고 불렀잖아요? 그때 어떠셨어요?

“깜짝 놀랐죠. 기분은 좋았어요. 자기 이름 붙은 정책 가진 장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그런데 솔직히 부담도 됐어요. 실패하면 어쩌나, 대통령님을 실망시키면 어쩌나, 이런 부담이 어깨를 짓눌렀죠."

-광명·시흥에 3기 신도시 추가 지정도 그래서 나온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죠."

-장관님이 떠나도 2·4대책이 잘 될 거라고 보세요?

“에이, 말도 안 되죠. 변창흠표 대책인데 변창흠이 없으면 잘 굴러가겠어요? 게다가 손발이 돼야 할 LH는 저 지경이니, 쯔쯧. 아차,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죠? 방금 한 말은 오프로 해주세요. 이제 공식 멘트 나갑니다. 제가 있든 없든 2·4 대책은 잘 굴러가야 합니다. 후임자가 잘 운영할 걸로 봅니다. 저는 대통령님 당부대로 기초작업까지 잘 마무리 짓고 가겠습니다.”

-됐구요, LH가 몰매를 맞고 있는데요. 전임 사장으로 마음이 아프시죠?

“말도 마세요. 제가 직원을 감싸다 아주 혼쭐이 났어요. 그저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식으로 몰아붙이니 그게 좀 안타까워요. 애가 잘못해도 이렇게 허투루 다루진 않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또 투기꾼 감싼다고 날벼락을 맞겠지만 그래도 할 말을 하니 속이 시원하네요.”

-LH 사장 시절 책임을 모면하려는 건 아니시죠?

“제가 그렇게 비겁한 사람 아닙니다. 책임지라면 지겠어요. 다만 LH가 국가 주택사업의 선봉장으로 쌓은 업적도 같이 평가해주셨으면 해요.”

-후임자한테 조언을 한다면요.

“패장이 주제 넘게 무슨 어드바이스를 하겠어요. 어쨌든 누가 오시든 늘 시장과 소통하길 바랍니다. 두 달 반 짧게 장관했지만 시장 신뢰를 얻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바로 설 수 없다는 걸 알겠더라구요. 아 잠시만요, 민주당에서 빨리 들어오라고 성화네요. 그럼 이만 바빠서.”

LH 사태와 변 장관 사퇴를 보면서 공자가 말한 네 글자가 떠오른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제자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식량(足食), 국방(足兵), 신뢰(民信)를 3대 요소로 꼽았다. 이 중 식량과 국방은 포기할 수 있어도 끝까지 포기 못하는 게 바로 백성의 신뢰다.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갔다. 거꾸로 집값은 다락같이 올랐다.
더 큰 문제는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 통에 집 없는 서민들만 더 괴롭다.



※이 글은 필자가 제멋대로 구성한 풍자임을 한번 더 밝힙니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늪에 빠진 부동산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