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곽인찬의 특급논설] 아파트 공시가격, 캘리포니아 스타일 어떤가

연례행사처럼 불만 터져
제도자체에 고질적 약점

일본은 부처별로 따로 계산
하나로 묶은 우리보다 낙후

미국 모델에 배울 점 있어
①캘리포니아: 매매 있을 때만 재평가
②뉴욕: 불복 신청 있을 때만 재평가
③텍사스: 3년에 한번 꼴로 재평가


[곽인찬의 특급논설] 아파트 공시가격, 캘리포니아 스타일 어떤가
아파트 공시가격 인상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대상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의 경우 공동주택 16%가 종부세 대상이다. 사진은 서울 노원구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아파트 공시가격에 대한 불만이 비등하다. 문재인정부 들어 연례행사다. 한꺼번에 너무 급하게 올랐다. 현실화율도 올랐고 시세는 퀀텀점프를 했다. 더블펀치다. 게다가 내가 남보다 더 오른 것 같다. 같은 시기에 입주한 같은 평수, 같은 시세인데 나만 종부세를 낼 것 같다. 이러니 공평성을 높이려 만든 공시가격 제도가 오히려 공평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공정'에 민감하다. 공정하면 아파도 꾹 참지만 공정하지 않으면 폭발한다. 현 아파트 공시가격제는 최선인가. 다른 대안은 없을까. 같이 고민해 보자.

[곽인찬의 특급논설] 아파트 공시가격, 캘리포니아 스타일 어떤가
국토부 보도자료(2021년 3월15일)

공시가격 누가 어떻게 조사하나


부동산공시법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해마다 공시가격을 공표한다. 조사는 국토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맡긴다. 현 손태락 원장은 국토부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 출신이다. 부동산원은 조사원을 현장에 투입한 뒤 결과를 국토부에 보고한다. 국토부가 머리, 부동산원이 손발인 셈이다 .

지난 15일 국토부는 2021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열람안을 발표했다. 해당자, 곧 집주인들은 4월5일까지 열람한 뒤 의견서를 낼 수 있다. 이어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가 가격을 공시한다(4.29). 그 뒤 한 달 간 이의신청을 받고, 6월 말 국토부가 최종 공시가격을 발표한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아파트 공시가격, 캘리포니아 스타일 어떤가
국토부 2020년도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연차보고서(2020년 9월)


어떤 한계가 있나


공시가격 산정 절차는 그럴듯해 보인다. 집주인이 두 번에 걸쳐 클레임을 걸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 있다. 의견서 한 번, 이의신청 한 번.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곳곳이 허점투성이다.

<조사 인원>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수조사를 한다. 이는 땅과 단독주택이 표준지 또는 표준주택 조사 방식을 택한 것과 다르다.

국토부가 작년 9월 국회에 제출한 '2020년도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연차보고서'를 보자. 지난해 부동산원은 총 1383만호에 달하는 공동주택을 조사했다. 놀라지 마시라, 이걸 단 520명이 처리했다. 1인당 평균 845개동에 이른다. 호수로는 1인당 2만6600호다. 조사원들은 멋진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 틀림없다. 지난해 공동주택 수는 늘었지만 조사인원은 되레 줄었다(2019년 550명→2020년 520명).

국토부 설명에 따르면 조사는 건성으로 하지 않는다. 국토부는 17일 공시가격 불만이 높다는 언론보도를 해명하는 자료를 냈다. "아랫집이나 윗집, 옆집과 공시가격이 차이가 난다고 가격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면서 "공시가격은 주택의 동 위치, 층 위치, 조망, 조향, 일조, 소음 등을 두루 반영해서 산출한다"고 설명한다. 대단하다. 그런데 가만, 조사원 한 명이 2만6600호의 조망, 조향, 일조, 소음까지 다 훑어본다고? 믿을 수 없다.

국토부에 문의하니 올해 조사인원은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유동적이라고 한다. 해마다 500~560명가량 투입됐으니 비슷한 규모일 걸로 추산된다. 조사인원 태부족은 올해라고 달라지지 않았다.

<이의신청 반영율>

이의신청 절차도 시늉에 그친다. 역시 국토부 연차보고서를 보자. 지난해 전국에서 8254건이 접수됐다. 공시가격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436건, 내려달라는 요구가 7818건이었다. 이 중 상향요구는 5건을 수용했고, 하향요구는 8건을 수용했다. 토탈하면 이의신청 8254건 중 13건만 받아들인 셈이다. 반영율 0.16%다.

애써 이의신청 내봤자 열만 받는다. 웬만하면 내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공시가격을 둘러싼 오랜 비판 가운데 하나는 깜깜이 산출이다. '당신 아파트가 올해부터 10억으로 올랐으니 그리 알라'는 식이다. 다행히 올해는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가 가격을 공시(4.29)할 때 산정 기초자료를 공개한다고 한다. 어디까지 투명하게 드러날지 기다려보자.

[곽인찬의 특급논설] 아파트 공시가격, 캘리포니아 스타일 어떤가
감사원 부동산 가격공시제 운용실태 보고서(2020년 4월)

대안이 있을까

전수조사를 고수하는 한 아파트 공시가격제는 근본적인 약점을 벗어나기 힘들다. 조사인원 부족에 따른 과부하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조사인원을 수천명, 수만명으로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년에 쓴 예산이 195억원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슬기로운 대안은 없을까.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 아래 미국·일본 모델은 감사원 보고서를 참고했다('부동산 가격공시제 운용 실태' 2020년 4월).

<일본 모델>

일본은 좀 구식이다. 우린 진작에 부처별로 따로 하던 부동산 평가 방식을 통일했는데 일본은 여전히 따로 논다.

첫째, 국토교통성 산하 토지감정위원회가 주관하는 지가공시가 있다. 매년 1회 표준지로 선정된 땅을 대상으로 가격을 공시한다.

둘째, 도도부현(都道府縣)이 주도하는 지가조사가 있다. 도도부현은 우리로 치면 광역지자체에 해당한다. 지사가 감정평가사의 평가를 근거로 기준지 가격을 판정하고 공시한다.

셋째, 국세청장이 실제 매매가, 감정사의 감정평가액, 지가에 정통한 자의 의견가격 등을 근거로 상속세 평가가격을 공표한다.

넷째, 시정촌(市町村)이 총무성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땅·집 등 고정자산을 3년에 한번 재평가한다. 시정촌은 우리로 치면 시군구에 해당한다.

평가 주체가 4군데로 나뉜 건 우리보다 못한 것 같지만, 도도부현이나 시정촌 등 지자체에 권한을 준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아파트 공시가격, 캘리포니아 스타일 어떤가
감사원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운용실태 보고서(2020년 4월)

<미국 모델>

일본보다는 미국이 흥미롭다. 미국은 연방국가답게 중앙정부가 부동산에 간섭하지 않는다. 50개 주정부가 알아서 다 한다. 그런데 주정부는 다시 하위 지자체에 위임한다.

▲뉴욕주 모델=주정부가 지자체(시티, 타운, 카운티 등)의 부동산 가치평가에 관여하지 않는다. 지자체는 부동산을 정기적으로 재평가할 의무가 없다. 대신 지자체는 부동산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활용한다. 재평가는 개별 부동산 가치에 대한 불복신청이 있는 경우에만 실시한다.

▲캘리포니아주 모델=매매가 이루어진 경우에만 부동산을 재평가한다. 매매가 있기 전에는 재평가를 아예 금지한다. 매매가 없는 기간엔 물가상승률만 반영한다.

▲플로리다주 모델=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매매에 의해서 재평가한다. 매매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매년 3% 한도 안에서 재평가액이 상승하도록 규정한다.

▲텍사스주 모델=적어도 3년에 한 번씩 재평가를 하도록 규정한다. 코네티컷주는 5년마다 재평가한다. 감사원은 비교적 잦은 재평가로 시가 반영율이 높다는 점에서 텍사스주 모델이 한국과 가장 유사하다고 평가한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아파트 공시가격, 캘리포니아 스타일 어떤가
15일 정부가 발표한 2021년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따르면 세종시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전년대비 70.68% 상승해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세종시 1생활권 아파트 모습. /사진=뉴스1

국토부에 묻는다

나는 미국 모델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지자체에 권한을 대폭 위임한다는 점, 매매가 이뤄질 때만 재평가를 한다는 점, 재평가 주기는 꼭 1년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점 등이 그렇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과 비좁은 한국을 단순 비교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지자체 권한도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세다. 지방자치 역사도 길다.

그럼에도 나는 국토부가 특히 매매가 이뤄질 때만 재평가를 하는 캘리포니아 방식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바란다. 예컨대 10년간 같은 아파트에 살면 재평가는 필요 없다. 대신 해마다 재산세는 물가상승률만큼 조금씩 오른다. 이렇게 하면 우리처럼 선량한 장기거주자의 미실현이익에 왕창 세금을 때리는 징벌적 과세를 피할 수 있다. 매매도 없는데 매년 집값을 의무적으로 조사해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 나아가 단기 차익을 노린 잦은 매매에도 브레이크를 걸 수 있지 않을까.

공시가격을 해마다 새로 내지 않으면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60여가지 조세·부담금·복지수급 기준이 엉망이 된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몸통인 공시가격이 틀을 바로잡으면 나머지는 절로 질서가 잡히지 않을까 한다.
기초연금 수급자의 경우 집값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캘리포니아 방식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미국 모델에 대한 국토부 베테랑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동시에 네티즌 여러분의 찬반 의견도 구한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아파트 공시가격, 캘리포니아 스타일 어떤가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