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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수에즈 운하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5 18:04

수정 2021.03.25 18:04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 직원이 선박에서 촬영한 좌초 선박 모습. 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진=뉴스1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 직원이 선박에서 촬영한 좌초 선박 모습. 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진=뉴스1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는 세계의 양대 운하로 꼽힌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유럽과 아시아를 최단거리로 연결한다면, 파나마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의 연결통로이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을 둘러가지 않으려고 뚫었다. 시간과 거리를 단축하는 것이다. 두 운하 모두 프랑스가 건설했지만 운영권은 영국과 미국에 넘어갔다. 양대 운하의 소유권은 곧 세계 지배권을 의미했다.


수에즈 운하가 1869년에 완공됐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4000년 전 처음 운하를 파기 시작했다. 2500년 전 페르시아제국을 여행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배 두 척이 노를 펴고 서로 교차통행이 가능한 넓이였으며, 횡단에 나흘이 걸렸다"고 기록했다. 약 1000년간 이집트 농산물 등이 중동으로 나가는 교통로로 활용됐다.

수에즈 운하를 완공했고, 파나마 운하 건설에도 도전했던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M 레셉스(1805~1894)는 '운하의 아버지'로 불린다. 수에즈 운하가 10년 만에 개통되기 전까지 9000명 넘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운하 개통 2년 만에 터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배상금 마련을 위해 보유주식을 내놓았고 결국 운하는 영국 차지가 됐다.

수에즈 운하 한복판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좌초되면서 유조선을 포함한 무역선박의 항행이 올스톱됐다. 길이 400m, 22만t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이 지난 23일(현지시간) 강풍에 항로를 이탈하며 운하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약 1만9000척, 하루 평균 51.5척의 선박이 통과해 전 세계 교역량의 12%를 담당하는 통로가 막히자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이집트는 제2차(1956년), 제3차(1967년)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운하를 지켜냈다. 2017년 상반기 기준 수에즈 운하가 이집트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력이나 통신업보다 크다.
운하가 국가와 도시의 운명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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