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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특급논설] 공시가 상한제? 번짓수가 틀렸다

올해 현실화 로드맵 첫해
실현가능성 사실상 제로

캡 씌우기는 대증요법
집값 안정이 근본 대책
정책오류 시정이 급선무
[곽인찬의 특급논설] 공시가 상한제? 번짓수가 틀렸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6일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공시가 인상율이 10% 수준을 넘지 않도록 조정제도를 두는 방안을 민주당에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박 후보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6일 부동산 공시가격 상한제 카드를 꺼냈다. 부동산은 민주당의 지뢰밭이다. 여길 무사히 건너지 못하면 시장 자리도 위태롭다.

박 후보는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공시가 인상률이 (전년비) 10% 수준을 넘지 않도록 조정제도를 두는 방안을 민주당에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4월 국회에서 (공시가격 조정제를 도입하는) 법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라는 말만 가리면 국힘 오세훈 후보가 한 말인 줄 착각하겠다.

◇ 4가지 걸림돌

박 후보의 공시가격 상한제 공약은 실현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4가지 걸림돌이 있다.

1. 당선 가능성이 낮다

객관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후보는 오세훈 후보에 크게 뒤진다. 오 후보가 자폭하지 않는 한 전세를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박 후보가 4·7 보선에서 지면 상한제 공약도 자연 물거품이 된다.

2. 종부세 감면 약속을 어긴 전례가 있다

작년 3월27일 당시 최재성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후보 10명이 합동기자회견을 가졌다. 4·15 총선을 채 20일도 남겨두지 않은 긴박한 순간이었다. 최 의원 등은 1세대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감면을 약속했다. 후보 10명은 '부자동네'에 출마한 이들이다. 서울에선 강남·서초·송파·양천·용산에 출마한 8인, 경기도에선 분당에 출마한 2인이 뜻을 모았다. "20대 국회가 종료되는 5월 29일 이전까지 종부세 해결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시한까지 못박았다. 당시 이낙연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이인영 원내대표도 옆에서 거들었다.

결과는? 한마디로 뻥이다. 아니, 아예 거꾸로 갔다. 민주당은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자마자 부동산 관련 법안을 빛의 속도로 강행 처리했다. 그 중엔 과세표준 구간별로 종부세율을 일제히 올리는 법안도 포함됐다. 공약의 신용도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유권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3. 공시가격 로드맵은 이미 정해졌다

국토부는 작년 11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확정했다. 공동주택, 단독주택, 땅의 공시가격을 연 평균 3%포인트씩 올려 향후 10~15년에 걸쳐 현실화율을 90%로 높이는 프로젝트다. 로드맵은 작년 4월에 개정된 부동산공시법에 근거를 둔다. 올해는 로드맵을 적용한 첫 해다.

지난주 초 국토부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 열람안을 내놨다. 불만이 있으면 접수하라는 뜻이다. 이어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시가격을 확정하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이때 한번 더 이의신청을 받는다. 그런 다음 6월25일 국토부가 아파트 공시가격을 최종 공시한다.

만약 박 후보의 요청대로 민주당이 4월 국회에서 공시가격 상승폭을 10%로 제한하는 법안을 처리하면 이 모든 절차가 엉망이 된다. 로드맵은 채 1년도 못 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만다. 아무리 서울시장 자리가 탐나도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지자체 반발도 만만찮을 것

박 후보는 상승폭 제한을 9억원 이하 주택에만 두자고 제안했다. 9억원은 종부세 커트라인이다. 고가주택에 물리는 종부세는 국세다. 반면 모든 주택에 물리는 재산세는 지방세다. 지자체장들은 공시가격이 뛴 덕에 재산세가 더 걷히면 뒤돌아서서 웃는다. 박 후보의 제안이 달가울 리가 없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공시가 상한제? 번짓수가 틀렸다
국힘 유경준 의원이 발의한 부동산공시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자료=국회 국토교통위 검토보고서)



◇ 국힘 유경준 의원안과 일맥상통

유경준 의원(서울 강남병)은 작년 6월 부동산공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통계청장을 역임한 유 의원은 국힘 부동산공시가격검증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이 개정안이 박영선 후보의 제안과 일맥상통한다. 개정안은 보유세 부담 완화를 위해 공시가격에 전년비 5% 상한선을 두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승폭이 5%냐 10%냐, 9억원 기준을 두느냐 마느냐 차이는 있지만 기본철학은 같다. 세금은 법률로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지금 국토교통위 소위에 올라가 있다. 결과적으로 박 후보가 유경준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 격이다.

부동산 정책이 엉망이다보니 조세 정책도 헝클어졌다. 선후를 따지면 조세가 부동산보다 먼저다. 하지만 한국에선 조세가 부동산의 종속변수 취급을 받는다. 이러니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박 후보의 다급함은 이해하지만 번짓수를 잘못 짚었다. 집값이 미친 듯이 뛰지 않으면 공시가격 소동이 벌어질 일도 없다. 로드맵대로 해마다 3%포인트가량 베이비 스텝으로 오르면 그뿐이다. 집값이 뛰니까 세금폭탄 불만이 쏟아진다.
설사 10% 캡을 씌운다 해도 대증요법일 뿐이다. 근본 원인은 그릇된 길을 고집하는 부동산 정책에 있다. 이걸 바로잡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공시가 상한제? 번짓수가 틀렸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