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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인찬의 특급논설] 바이든은 증세, 우린 국채

 [곽인찬의 특급논설] 바이든은 증세, 우린 국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 31일(현지시간) 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카펜터스 트레이닝 센터에서 인프라 투자 등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총 2조3000억 달러 규모의 8년 장기 인프라·일자리 투자 법안인 '미국 일자리 계획'을 발표하면서 재원 조달 수단으로 법인세 증세 카드를 꺼냈다./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는 조 바이든을 ‘졸리운 조’(Sleepy Joe)라고 놀렸다. 그러다 대선에서 한방 먹었다. 알고 보니 바이든은 졸리운 사람이 아니다. 졸립긴커녕 용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증세 카드다. 세상 어떤 정치인도 증세를 싫어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바로 한국이 그렇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증세라면 손사래부터 친다.

바이든 대통령은 달랐다. 그는 지난주 2조3000억달러(약 2600조원)짜리 인프라 투자 계획을 내놨다. 규모가 엄청나다. 미국 언론은 이를 ‘루스벨트의 순간’이라고 불렀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펼친 뉴딜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증세 카드다. 바이든은 법인세율은 현행 21%에서 28%로 올리겠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7%포인트!

한국이라면 난리가 났을 거다. 증세에 민감한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당장 공화당이 반대 깃발을 들었다. 미국 재계도 입이 나왔다. 바이든은 증세에 성공할 수 있을까? 바이든 증세는 한국에 어떤 교훈을 줄까.

◇ 왜 증세 카드인가

앞서 바이든은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코로나 부양책을 밀어붙였다. 한국 재난지원금처럼 미국 가정에 나누어 주는 돈이 다 여기에 들어 있다. 이번에 나온 2조3000억달러는 산업부흥책이다. 도로, 철도, 항만 등 인프라가 중심이지만 초고속통신망을 깔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예산도 잡혔다. 둘을 합치면 4조달러가 넘는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바이든은 머잖아 교육, 의료, 보육 등에 초점을 맞춘 ‘휴먼 인프라’ 계획을 또 내놓을 예정이다. 통틀어 바이든 뉴딜이라고 부를 만하다.

문제는 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의 국가채무는 21조4600억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약 2경4200조원이다. 전 세계 나랏빚의 31%가 미국 빚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04% 수준이다. 이 비율이 미국보다 높은 나라는 주요국 가운데 일본, 이탈리아 정도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 워낙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미국은 달러 기축통화국이다. 달러 표시 국채를 사려는 수요는 늘 차고 넘친다. 그러나 안심할 순 없다. 빚더미를 방치하면 어느 순간 신뢰가 꺾이게 돼 있다. 중국은 그런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그래야 위안화가 달러를 끌어내리고 기축통화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증세 카드를 꺼내든다. 제 정치생명을 건 모험이다. 트럼프는 2017년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내렸다. 인하폭이 무려 14%포인트에 이른다. 바이든은 이 중 절반, 곧 7%포인트를 원위치할 계획이다.

바이든은 인프라 투자 기간을 8년으로 잡고, 법인세 증세를 15년 간 유지하려 한다. 친기업 성향의 싱크탱크 택스파운데이션(Tax Foundation)은 법인세율을 28%로 올릴 경우 2022~2031년 기간 중 세금이 8863억달러 더 걷힐 걸로 추정한다. 넉넉한 세수는 아니지만 적자국채 부담을 꽤 덜 수 있다.

바이든은 부자 소득세율도 37%에서 39.6%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바이든은 증세, 우린 국채
미국 법인세율 추이. 까만선은 법정세율, 초록은 실효세율. 법정세율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21%로 떨어졌다. (자료=Wikipedia)

◇공화당, 재계는 반대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감세파다. 레이건, 부시, 트럼프가 다 세금을 깎았다. 그러니 바이든 증세가 탐탁할 리가 없다. 미치 맥코넬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바이든 증세안을 ‘트로이의 목마’라고 불렀다. 겉으론 그럴 듯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재정적자와 세금으로 가득 찬 위험천만한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재계는 법인세율 인상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을까 우려한다. 택스파운데이션은 연방정부 법인세와 주정부 법인세를 합치면 세율이 평균 32.34%에 이를 걸로 본다. 이는 주요 7개국(G7)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높다. 이어 증세를 강행하면 일자리 약 16만개가 사라진다고 경고한다.

◇바이든 증세는 성공할까

민주당이 지배하는 하원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인프라 투자 법안을 오는 7월4일 독립기념일 이전에 처리하길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다.

상원은 만만찮다. 공화, 민주가 50대 50으로 맞서 있기 때문이다.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던질 수 있지만 공화당이 저항하면 삐걱댈 수밖에 없다. 공화당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무력화하는 패스트 트랙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상원의원 가운데 단 한 명만 이탈해도 균형이 무너질 판이라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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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서 증세는 금기어다. 그러다 보니 꼼수 증세가 성행한다. 4·7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사진=뉴스1

◇솔직한 정치가 부럽다

우리도 증세를 안 한 건 아니다. 문재인정부 초기 대기업 법인세율을 25%로 올렸다. 이명박정부가 22%로 내린 걸 원상복귀시켰다. 종합부동산세율도 올렸고,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은 45%까지 올랐다.

하지만 충분치 않다. 워낙 정부 씀씀이가 커서다. 눈덩이 복지비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쳤다. 걸핏하면 추가경정예산을 짜지만 대부분 적자국채로 충당한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화가 잔뜩 났다. 국채는 결국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4·7 보선에서 청년층의 이반은 당연하다.

증세 정공법을 피하다 보니 자꾸 꼼수 증세가 나온다. 박근혜정부는 국민건강을 핑계로 담뱃값을 올렸다. 연말정산 방식을 바꾸고는 거위털 뽑기라고 말했다. 문재인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앞세워 보유세(종부세·재산세)를 더 걷는다. 이런 식으로 세금을 걷어 가면 납세자는 짜증이 난다. 어쩐지 바보처럼 주머니를 털리는 기분이 들어서다.

한국 정치에서 증세는 금기어다. 4·7 보선에서도 후보들은 세금 깎아주겠다는 달콤한 말만 한다. 사실 이건 대놓고 젊은 유권자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세금 아니면 국채인데, 국채는 미래세대에 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바이든 뉴딜을 내놓으면서 솔직하게 증세 카드를 내밀었다. 성패를 떠나 용기를 높이 사고 싶다. 우린 한국판 뉴딜을 내놓았다.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 두 기둥을 사회안전망이 떠받치는 구조다.
그러나 증세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 한국은 재정이 남아 돌아서? 그럴 리가. 표 계산 하느라 바쁘거나 용기가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랏빚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바이든은 증세, 우린 국채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