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이 전시] 흉측한 콘크리트 조각이 의미하는 것은?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08 14:06

수정 2021.04.08 14:06

바라캇 컴템포러리 갤러리, 마이클 딘 '삭제의 정원'展
마이클 딘 '삭제의 정원' 전시 전경 / 바라캇 컨템포러리 갤러리 제공
마이클 딘 '삭제의 정원' 전시 전경 / 바라캇 컨템포러리 갤러리 제공
세상의 어떤 아름다웠던 것들도 시간을 이길 순 없다. 중세시대 세계적인 미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깎아낸 조각도 햇볕에 원래의 빛을 잃어가고 바람에 어느새 닳아버린다. 생명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마저 노화를 이기지 못한다. 생물과 무생물, 모든 것들이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이렇게 되면 결국 모든 미래가 비극이지 않냐 싶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모든 것이 부서져 흙이 되어도 다시 그 안에서 생명은 피어난다. 자연의 대순환은 그런 것이다. 그 과정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이 때론 흉하다 느껴질지도 모르나 결국 순환하기에 역설적으로 그 순간순간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영국의 조각가 마이클 딘이 선보인 작품 '삭제의 정원'이 바로 이를 말한다.

마이클 딘 '삭제의 정원' 전시 전경 / 바라캇 컨템포러리 갤러리 제공
마이클 딘 '삭제의 정원' 전시 전경 / 바라캇 컨템포러리 갤러리 제공
서울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 갤러리 안에 들어서려 문을 여는 순간 화들짝 놀랄만큼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코 앞에 놓인 콘크리트 기둥에 흠칫 놀라며 조심스레 한 발 살짝 들여놓으면 화이트 큐브 위 폐허가 가득하다. 깎이고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녹슨 철골 골재가 앙상하게 드러난 잔해들, 때로는 미라처럼 보이는 인체 형상과 동물의 뼛조각들이 삐딱하게 서 있거나 누워 있다. 그 사이 광고 전단지와 페이지마다 'X'자가 쓰여있는 찢어진 책과 잔해들, 씹다 뱉은 껌이 붙어 있다. 얼핏 밖에서 보면 쓰레기들이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혼돈스러운 광경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 쯤 조심스레 발길을 옮겨 전시장 2층으로 올라 지나온 곳을 내려다보면 이제서야 알 수 있게 된다. 무심하게 놓인 듯한 잔해들이 모여서 문자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찬찬히 훑어보면 각각의 조각들은 행복과 깨어짐, 슬픔, 뼈, 함께함 등을 말한다. 작업의 중심에 늘 언어를 두었던 마이클 딘은 영국 일포드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 정원을 바라보며 이번 작품을 구상했다.
딘은 "정원 곳곳에 놓여있는 자신의 콘크리트 조각들이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작품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세계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질서에서 무질서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의 '긴 파괴의 엔트로피'를 그의 작업의 세계관으로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5월 30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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