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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고난의 행군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11 18:00

수정 2021.04.11 17:59

'가는 길 험해도 웃으며 가자.' 평양 등 북한 어디에서나 나부끼는 슬로건이다. 이른바 혁명적 낙관주의를 고취하려는 수사다. 여하한 곤경에서도 '최고 존엄'인 수령을 믿고 따르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이 최종 승리할 것이란 주민 독려용 메시지다.

이 구호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집권 당시인 소위 '고난의 행군' 때 등장했다. 1차 북핵 위기 이후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심화된 1995~1999년께였다. 구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이 도미노 붕괴한 뒤 가뭄과 홍수를 번갈아 겪던 무렵이었다.
당시 적게는 수십만명, 많게는 200만명을 웃도는 북한 주민이 아사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고난의 행군이란 말은 세습정권의 초대 수령인 김일성 주석이 이끈 항일 빨치산이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 속에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가의 보도인 양 '고난의 행군' 카드를 다시 빼들었다. 그는 8일 노동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권좌에 오른 직후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조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던 것과 딴판이다. 국제사회의 북핵 제재가 장기화하려는 참에 허리띠를 졸라매 경제난을 타개하겠다는 속내로 풀이된다. 북한이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쉽게 제재를 풀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북한이 핵능력 고도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1차 고난의 행군을 체험한 한 탈북자는 "(김정은의) 최후 오판이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또다시 "험한 길을 웃으며 가자"고 하기엔 생활고에 지친 주민들의 불만이 너무 크다는 얘기였다.
북한 정권이 얼마 전 일종의 한류금지법인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하는 등 내부 기강잡기에 나선 것도 이를 의식한 조처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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