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정치

"어쩔수 없지 않나" 日오염수 방류를 마주한 도쿄시민의 침묵 [글로벌 리포트]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18 17:04

수정 2021.04.18 18:44

올해 굵직한 선거 앞둔 스가 총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에도
정치적 부담 없다는 확고한 믿음
그배경에는 일본인들의 '타자화'
"과학적으로 문제 없다고 했다"
"불편하면 다른지역 식품 구입"
실제 반대시위 참여 300여명뿐
日, 국제 여론전서도 이미 완승
美 국무부 "글로벌 기준에 부합"
IAEA는 뒤이어 지지 성명까지
지난 13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 앞에서 시민단체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약 320명이 참석했다. 사진=조은효 특파원
지난 13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 앞에서 시민단체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약 320명이 참석했다. 사진=조은효 특파원
"어쩔수 없지 않나" 日오염수 방류를 마주한 도쿄시민의 침묵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1년짜리 내각으로 단명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13일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일본 정부는 '처리수'라고 칭함) 해양방류를 결정했다. 한국의 정치공학적 감각으로는 사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이다.
총리 자신의 명운을 판가름할 자민당 총재 선거(오는 9월)와 중의원 총선거라는 두 개의 선거가 반년 내로 예고돼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부담이 가는 정책결정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중의원 해산은 시기를 특정하지 못한 채 민심의 동향만 저울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스가 총리의 지지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정권 초기 70% 안팎이었던 내각 지지율은 40% 안팎에서 저공비행하고 있다. 도쿄전력이 2022년 여름이면 후쿠시마 원전 내 보관 중인 오염수 저장탱크가 포화 상태에 이른다고 주장한들 당장 올 9월 총리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판에 "정치는 곧 숫자다"를 체화했을 '정치 9단' 스가 총리가 이런 무리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사실 여기까지는 한국적 감각에 기초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이 선거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왜 지장을 주지 않는가. 이 질문을 짚어들어가다 보면 '3개의 침묵'과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 도쿄 사람들의 침묵

"일본 국내에서도 반발." 최근 한국에서 보도되는 대부분의 뉴스에는 이런 제목이 달려서 나가고 있지만, 현지 반응은 한국에서 기대하는 수준의 '그런 반발'은 아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반발하는 곳은 후쿠시마 어민과 어민단체, 환경단체 정도다.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남의 일인 양' 타자화하는 도쿄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식탁에 오를 수산물 걱정이 아닌 "후쿠시마 어민들이 원전사고 발생 후 지난 10년간 일껏 고생해 왔는데, 그들이 입을 풍평피해(뜬소문)가 걱정된다"는 정도다. 지난해 말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방류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55%였는데, 그 이유가 나와 우리 가족의 안전성 문제 때문인지, 후쿠시마 사람들에 대한 우려 걱정 때문인지는 좀 더 구분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본 정부의 방류 결정이 이뤄진 지난 13일과 직전 12일, 도쿄 나가타초 총리관저 앞에서는 일본 환경단체들의 시위가 있었다. 첫날 약 250명, 당일 약 320명이 모였다. 지난 2008년 4월부터 약 3개월간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서 매주 수천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이 모여 쇠고기 광우병 촛불집회를 벌였던 것과 대비된다.

지난 13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현장에서 평화포럼이란 단체의 공동대표 야스나리 후지모토씨에게 물었다. "이 문제에 도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지 않나?"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지금이라도 힘을 모아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A씨(40대 중반, 도쿄 거주)는 이번 결정이 나기 전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과학적으로 후쿠시마 수산물이나 농산물이 그다지 위험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슈퍼에 가면 다른 지역의 농산물, 수산물이 있다. 꺼림칙한 기분이 들면 다른 지역 것을 사 먹으면 된다." 혹자는 "후쿠시마 사고는 일본인들에게 '세월호 참사'와 같은 것이기에 대놓고 후쿠시마 농수산물을 먹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50대 일본 언론인 B씨(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거주)도 일본 정부의 해양방류나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먹는 데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며 "언젠가는 처리해야 하는 것이고,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다른 지역의 수산물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40대 일본인 변호사 C씨(도쿄 거주)는 "일본 정부가 기준치 이하로 흘려보낸다고 하니,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고 아이들에게도 먹일 수 있다"고 했다. 역시 두 아이의 아빠인 D씨(회사원, 40대 중반, 도쿄)도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면서 "한국도 트리튬이 든 물을 흘려보내면서 왜 일본만 안된다고 하느냐"고 되레 반문을 했다.

이런 반응은 대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는 것과 "정부가 과학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하니…"라는 반응으로 요약된다. 또 다른 일본의 언론인은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를 많이 겪다보니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는 자세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는 "예상보다는 일본 내에서 반발이 있어서 일본 정부가 조금 놀랐다"고는 했다. 이 얘기는 대세를 뒤집을 만한 반발은 아니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반응이 일본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겠으나 도쿄권을 벗어나 간사이, 규슈 등으로 갈수록 이런 시각은 더욱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후쿠시마에서 도쿄까지 직선까지는 약 240㎞,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도쿄를 비롯해 수도권 지역에서는 일본 인구의 30%인 3500만명이 살고 있다. 이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뭘까.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한국, 미국 등 원전국가들도 다 흘려보낸다는 '동일시 전략' △여과장치로도 걸러지지 않는 12가지 방사능 핵종의 위험성은 제외한 채 삼중수소(트리튬)로 문제를 국한하는 '축소전략' △안전성엔 문제가 없으니 풍문이나 개인의 인식이 문제라는 '개인화 전략' 등 3가지다.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 알프스)에 두 번 돌려도 요오드 131, 세슘 134·137, 스트론튬 90 등은 걸러지지 않는다. 정상가동 원전에서도 나올 수는 있으나, 사고원전에서 대거 유출되는 핵종이다. 일본 환경성조차도 이들 핵종을 이른바 '사고 유래 핵종'이라고 부른다. 이 역시 바닷물로 희석해 방류하면 극히 미미하다는 게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일본 주류 언론들은 스가 총리의 이번 결정에 대해 "정치적 결단이다"라고 표현하면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트리튬 방류량은 연간 22조베크렐(㏃)인데, 한국 고리원전에서는 트리튬 45조㏃, 월성 23조㏃을 방류했으며 프랑스의 재처리시설에서는 무려 1경3700조㏃, 미국의 한 개 원전에서는 51조㏃을 방류한다는 수치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언론이나, 시민단체 간 연대가 약하다는 것 역시 후쿠시마 원전 방류 반대 '대규모 시위'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5년 아베 정권 당시 "전쟁 반대"는 외치며 안보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에 무려 10만명 넘는 인원이 참가한 바 있으나 결국 막지 못했다는 실패 경험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팔짱을 낀 채 나란히 서 있다. 자료사진. 로이터 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팔짱을 낀 채 나란히 서 있다. 자료사진. 로이터 뉴스1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지난해 2월 후쿠시마 원전을 방문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AP뉴시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지난해 2월 후쿠시마 원전을 방문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AP뉴시스

■제2,제3의 침묵과 동조…IAEA·미국

이 게임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복선은 이미 깔려 있었다. 지난 2019년 9월 16일 당시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한국 정부를 대표해 오스트리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에서 열린 IAEA 정기총회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후쿠시마 방류의 문제점을 공식 제기하고 IAEA의 적극적 역할을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이 연설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이미 상황은 일본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문 차관의 문제제기 후 열린 국제원자력규제위원장 간 연례회의에서 미국 측은 "원자력 규제에 맞는 얘기를 하라. (한국이) 환경단체냐"는 식의 망신 주기에 가까운 발언을 내놨다고 한다.

IAEA는 원자력 규제기구이자 '진흥기구'다. 원자력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역시 트리튬 등 방사능 물질을 흘려보내고 있어 이번 게임은 국제 원전클럽 간 봐주기와 연대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한발 나아가 일본 정부에 적극 힘을 실어줬다. "해양방출이 현실적 판단"이라는 스가 총리의 발언이 타전(13일 오전 8시10분)된 지 불과 1시간25분 만인 오전 9시35분 미 국무부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원자력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며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등 일본 정치인들이 지지 발언을 위해 입을 떼기도 전에 미국에서 한발 앞서 성명을 내놓은 것이다. 이후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당일 오후 지지성명을 내며 국제 여론전에서 일본에 '완승'을 안겨줬다.


일본 정부는 예정대로라면 오는 2023년부터는 방류에 들어갈 작정이다. 한국 국민이 바라는 뒤집기는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가장 가까이서 일본 수산물을 먹을 일본 국민이 나서지 않고 있으며, 일본이 방류하면 가장 먼저 도달할 태평양 국가인 미국, 캐나다가 방류에 동조하고 있어 한국의 우군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