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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文과 바이든이 반도체를 대하는 법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22 18:03

수정 2021.04.22 18:03

[강남시선] 文과 바이든이 반도체를 대하는 법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4월 말 경기 화성 소재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반도체 재료인 웨이퍼에 서명했다. 이 웨이퍼는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공정을 통해 만들었다. 이때만 해도 뭐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국의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분야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손에 들고 "반도체가 미국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반도체를 국가안보 상징인 전략물자로 규정한 것이다.
화상회의 정면을 쏘아보며 똑바로 응시한 채 말이다. 바이든이 든 웨이퍼 사진 한 장은 미국 반도체 굴기의 모든 걸 보여준다. 바이든은 대놓고 회의에 참석한 글로벌 기업들에 자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를 압박했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지난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우리가 계속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도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검토 중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그동안 정부에 여러차례 규제완화·세금감면 등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귓등으로 흘렸다. 특히 반도체 설계·제조에 필요한 첨단인력 부족은 한국을 시스템반도체 후진국으로 만들었다.

이러는 사이 한국 시스템반도체산업 성장판이 닫힐 위기에 처했다. 한국은 이 시장에선 맥을 못 춘다. 메모리 시장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꽉 잡고 있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지금은 인공지능(AI)·전기차·자율주행 등이 주도하는 디지털 대격변기다. 모두 시스템반도체가 요긴하게 쓰인다. 시장은 크게 반도체 설계(팹리스)와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으로 나뉘는데 이 둘이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좌우한다.

문제는 한국 팹리스 토양이 매우 부실하다는 점이다. 세계 팹리스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10년째 1%대에 갇혀 있다. 퀄컴·AMD·엔비디아 등 글로벌 팹리스 강자들이 즐비한 미국이 70%가량 장악했다. 후발주자들의 추격으로 삼성의 메모리분야 1위 자리도 언제 빼앗길지 모른다.

바이든 정부는 총 500억달러(약 55조8000억원)를 반도체분야에 쏟아부을 참이다. 미 정부와 의회는 자국 기업들엔 든든한 언덕이다.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은 바이든 정부의 지원으로 파운드리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5년 반도체를 미래산업으로 보고 인프라 투자에 집중했다. 그 결과 메모리분야에서 삼성을 세계 최강으로 키웠다. 아들 이재용 부회장은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내놨다. 오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이 목표다.


이 부회장은 작년 12월 30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 최후진술에서 "최고의 도덕성과 투명성을 갖춘 삼성을 만드는 게 승어부(勝於父·아버지보다 나음)"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년4개월 만에 주재한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반도체산업은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핵심 국가전략 산업"이라고 말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승어부를 외친 이재용 부회장의 손과 발은 다 묶여있다. 바라건대 국익 차원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진지하게 고민해달라.

haeneni@fnnews.com 정인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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