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단체

[fn시평] K-방역에 백신은 없었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27 18:32

수정 2021.04.27 18:32

[fn시평] K-방역에 백신은 없었다
거의 일년 만에 방문한 캘리포니아는 작년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랐다. 작년에는 거리에 사람과 차가 없어서 거의 유령도시 같았다. 산과 들과 해변도 다 봉쇄됐다. 코로나가 거의 통제 불가능이어서 주지사가 집에만 머무르라고 행정명령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 감염자와 사망자가 제일 많은 국가다. 주재원과 유학생들은 한국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모두 다 귀국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쓰며 조심해야 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도시가 활기찼다. 말리부 해변은 서핑하는 젊은이로 넘치고, 와이너리는 와인 테스팅하러 온 방문객들로 북적거린다. 휴양지인 카탈리나섬도 주말에는 예약이 불가능할 정도다. 거의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안정의 배경에는 백신이 있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주민의 약 53%가 1차 접종을 끝냈다고 한다. 전국적 약국 체인인 CVS나 월그린 웹사이트에서 예약하면 현장에서 기다리지도 않아도 되고,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일부 주는 주민이 아니어도 누구나 신분만 확인되면 백신을 무료로 맞을 수 있다. 그것도 한국에서는 맞기 어려운 모더나나 화이자 백신이다.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작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코로나 방역 선두주자로 모범사례라고 했다. 정부가 나서서 K-방역의 성과 보도자료를 낼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제야 백신 계약을 발표하고, 일부에서는 백신을 맞으려고 미국 방문을 문의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일년 만에 두 나라의 상황이 역전됐다. 우리나라는 백신 1회 접종률 2.95%를 기록하고 있다. 이 통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개국 가운데는 35번째로 최하위권이다. 남들은 3차 접종인 부스터 샷까지 거론하는데 우리는 아직 1차 접종도 어려우니 일찍 백신을 확보한 나라들이 부럽기만 하다.

왜 이리 백신접종이 늦은 것일까.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한마디로 확신이 없는 백신에 투자할 배포 있는 사람이 없어요. 감사도 받아야 하고요. 백신이 필요 없다고 말한 전문가의 의견도 잘못됐고요" 이유는 수십 가지다. 하지만 작년 11월 대통령이 왜 이리 백신이 늦느냐고 호통을 치고, 백신 공급 제약회사 모더나 회장과 직접 통화할 때 그나마 안심은 됐다. 하지만 글로벌 세계에서는 그런 식의 보여주기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상황에 너무 지쳐 있다. 작년에는 백신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으니 암울한 현실도 참을 수 있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49%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부정적 평가를 한 사람의 절반 이상은 백신 확보와 공급 문제를 지적했다. 그토록 자랑하던 K-방역에 백신은 없었다. 사실 K-방역의 주인공은 불철주야 헌신한 의료진과 코로나를 조심하고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른 현명한 국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지난 토요일 화이자 백신 대규모 도입계약을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백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계약 발표보다도 백신의 안전성과 접종을 언제 시작하느냐다.
검증된 백신이 조속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부는 초기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고, 많은 국민이 호응했지만 이러다가는 '백신도 못 맞는 나라가 나라냐'라는 말이 곧 나올지도 모르겠다.
정부의 제일 중요한 역할은 그 무엇보다도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건강과 안전을 챙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