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삼성생명법을 둘러싼 6가지 질문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04 14:05

수정 2021.05.04 14:07

총수 교체 민감한 시기에
보험업법 개정안이 복병
공연히 긁어부스럼 될라
서랍에 넣어두는 게 해법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상속이 일단락된 가운데 보험업법 개정안이 이재용 체제 구축에 복병으로 등장했다. 사진은 이 부회장이 고 이건희 회장 49재를 지내기 위해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를 찾아 스님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사진=뉴스1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상속이 일단락된 가운데 보험업법 개정안이 이재용 체제 구축에 복병으로 등장했다. 사진은 이 부회장이 고 이건희 회장 49재를 지내기 위해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를 찾아 스님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삼성생명을 겨냥한 이른바 삼성생명법이 논란이다. 정확히 말하면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이용우 의원이 작년 6월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냈다. 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얼마전 삼성가(家)가 이건희 회장 유산 상속을 마무리지었다. 이 회장 소유이던 삼성생명 주식(20.76%)의 절반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돌아갔다. 이 덕에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율은 단숨에 10.44%로 높아졌다. 배우자인 홍라희 여사는 아예 삼성생명 주식 상속에서 빠졌다. 아들이자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삼성 지배구조는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그룹의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를 지배하려면 삼성생명 지분 확보가 필수다.

그런데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총수 이재용에게 난처한 일이 생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8.51% 가운데 약 6.6%를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이 뚝 떨어진다. 생명ㅡ전자를 잇는 연결고리가 가늘어지기 때문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의 취지는 뭔지, 또 문제는 뭔지 살펴보자.

◇개정안 어떤 내용 담았나

보험업법을 바꾸려는 시도는 19대, 20대 국회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무산됐다. 작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여세를 몰아 박용진 의원 등이 보험업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셋이다. ①보험사가 가진 다른 회사 주식은 취득원가가 아니라 시가로 평가한다. ②개정안 시행 후 초과 보유 주식은 5년(금융위가 승인하면 7년) 안에 처분한다. ③처분 안 한 주식은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다.

①부터 보자.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원가로 평가한다. 삼성생명이 제멋대로 그러는 게 아니다. 보험업 감독규정을 따른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현행 보험업법 106조에 걸리지 않는다. 106조는 보험사의 자산운용 방법과 비율을 규정한다. 바로 여기에 3% 룰이 있다. 곧 보험사(삼성생명)가 계열사(삼성전자) 주식을 보험사 총자산의 3% 이상 가져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3%를 크게 밑돈다. 삼성전자 주식을 오래전 매입가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정안은 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라고 한다. 삼성전자가 어떤 회사인가. 한국 최고, 아니 세계 전자업계 톱클래스 기업이다. 시가로 평가하면 3%를 훌쩍 뛰어넘는다. 초과분을 안 팔면 단박에 범법자가 될 판이다.

②는 경과 규정이다. 박용진 의원안은 법 시행 후 초과 지분 매각 기간으로 5+2년을 제시한다. 최장 7년이지만 원칙은 5년이다. 어기면 이행강제금을 매긴다.

③은 또다른 벌칙이다. 끝내 보험사가 3% 초과 지분을 팔지 않으면 해당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주총에서 의결권 없는 주식은 있으나마나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은 초과 지분을 팔아도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고, 안 팔아도 지배력이 약화된다.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정무위 검토보고서 캡처.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정무위 검토보고서 캡처.


◇개정안의 좋은 취지

개정안은 근사한 명분이 있다. 보험사가 자산 운용을 특정 기업에 집중하면 좋지 않다. 만에 하나 그 기업이 망하면 고객에게 보험금을 내주지 못할 수도 있다. 특정사가 같은 계열사라면 더 문제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다.

시대 흐름에도 맞는다. 국제회계기준(IFRS)은 공정가치, 곧 시가 평가가 기준이다. 과거 장부가로 계산하던 건물도 시가를 따져서 재무제표에 반영하라고 주문한다. 보험업계는 오는 2023년부터 보험부채의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다 바꿔야 한다. 이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요컨대 시가 평가는 대세다.

업권별 형평성을 맞춘다는 의미도 있다. 현재 은행과 저축은행, 금융투자사들은 주식을 시가로 평가한다. 보험업만 취득원가로 잡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같은 보험업 안에서 기준이 들쭉날쭉한 한 것도 문제다. 예컨대 총자산은 시가, 주식은 취득원가 기준이다. 누가 봐도 불합리하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사진=뉴스1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사진=뉴스1


◇개정안을 둘러싼 6가지 질문

그러나 개정안은 문제점 또한 수두룩하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1)뒤통수를 치는 격=삼성은 1963년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을 인수했다. 6년 뒤인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됐다. 이때 삼성생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삼성생명이 언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당시 공시제도가 지금처럼 투명하지 않아서다. 다만 삼성전자를 설립할 때 지분 참여를 했고 이후 추가 매입한 것은 맞다. 이런 일이 죄다 1990년대 이전에 이뤄졌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지난 30년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소유한 것은 적법했다. 그런데 국회가 보험업법 개정안을 들고 나오면서 졸지에 위법으로 몰릴 판이다. 이에 대해 개정안을 분석한 정무위 검토보고서는 "신뢰보호 원칙 위반 및 재산권 침해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귀담아들을 만한 지적이다.

(2)소급 적용은 위헌 소지=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취득은 현행 법·규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 뒤늦게 법을 바꿀 테니 새 법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건 정치의 오만이다. 이는 준법을 응징하는 격이다. 나중에 위헌소송을 걸면 삼성에 승산이 있다.

(3)매물 폭탄은 증시에 부담=개정안 시행시 삼성생명이 팔아야 할 삼성전자 지분은 3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삼성전자 시총(492조원·5월4일)의 약 6% 수준이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매물폭탄은 당장 증시에 악영향을 끼친다.

삼성전자 주식을 쥔 개미투자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올들어 국민연금이 자산운용 내부 룰에 걸려 국내주식을 꾸준히 팔았다. 그러자 개미들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국민연금은 재량권을 넓히는 꼼수로 국내주식 비중을 높였다. 그제서야 개미들 불만이 사그라들었다. 비슷한 일이 삼성전자 주식 매각에서도 나타날지 모른다.

(4)매각 시한 5년이 충분한가=개정안은 초과보유 주식 매각 시한을 5년으로 잡았다. 예외적으로 금융위가 2년을 연장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무위 검토보고서는 "5년 유예기간이 대규모 주식 매도에 따른 국내 주식시장의 충격 등을 완화하기에 충분한 기간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금융위는 "과거 적법하게 취득한 지분을 매각하도록 하는 경우 충분한 유예 기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매물 덩치를 고려할 때 최소한 10년+a가 합리적으로 보인다.

(5)의결권 제한은 과잉규제=개정안은 3% 초과 지분을 팔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물린다. 이행강제금은 초과 보유 주식의 10%다. 덧붙여 해당 초과 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행강제금을 물리면서 추가로 의결권까지 제한하는 것은 과잉 입법 소지가 크다.

(6)자산운용 제한 자체가 낡은 규제 아닌가=원래 보험업법의 3% 룰은 계열사 부당지원을 차단하는 게 목적이다. 이는 개발독재 시절 재벌이 보험사를 사금고로 악용하는 걸 막으려 도입됐다. 고객이 맡긴 돈으로 재벌이 딴짓 할까봐 방어벽을 친 거다.

지금은 사정이 딴판이다. 삼성전자가 돈이 없어 삼성생명한테 손을 벌리겠는가. 삼성전자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주식이다. 이걸 더 사진 못할 망정 있는 것마저 내다 팔라고 하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대주주나 계열사 등에 대한 투자한도를 별도로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일본은 2001년 시가 평가를 전면 도입했으나 투자한도 계산시 자회사 주식은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한다.

국회가 보험업법 개정안을 이른 시일 내 처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영결식 모습. /사진=뉴스1
국회가 보험업법 개정안을 이른 시일 내 처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영결식 모습. /사진=뉴스1


◇개정안은 묵히는 게 해법

보험업법 개정안은 국회 소관이다. 정치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척 봐도 이른 시일 내 국회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 21대 국회는 민주당이 장악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치러진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민주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고개를 푹 숙였다. 보험업법 개정은 당론도 아니다. 야당 국민의힘은 반대다.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을 밀어붙일 힘이 없다.

이재용 부회장을 둘러싼 여론도 변수다. 경제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 부회장을 사면하라는 여론이 퍼졌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 대비하려면 총수의 현장 지휘가 절대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삼성가(家)는 12조원을 웃도는 상속세 발표와 '이건희 컬렉션' 기부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여론도 호의적이다. 이 마당에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법안을 강행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이렇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그냥 서랍에 넣어두라. 국가대표 기업 삼성은 총수 교체라는 민감한 시기에 있다. 현 시점에서 개정안은 긁어부스럼이 될 공산이 크다.
삼성생명이 지금 위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개정안을 통과시켜서 우리가 얻는 이득이 뭔가?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을 혼내는 거? 그래서 우리 경제가 얻는 게 뭔가?

[곽인찬의 특급논설] 삼성생명법을 둘러싼 6가지 질문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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