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코로나 양극화, 이를 어쩌나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17 18:00

수정 2021.05.18 09:56

외환위기 때 생긴 고질병
코로나로 상처 더 깊어져
제도적 구휼 시스템 절실
[곽인찬 칼럼] 코로나 양극화, 이를 어쩌나

'자산어보'는 잘 만든 영화다.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생활을 그렸다.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다. 삼정(三政)의 문란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환곡. 춘궁기에 백성들에게 쌀을 뀌어주는 훌륭한 제도다. 그런데 쌀에 모래를 섞는다.
그래놓고 가을 수확기에 돌려받을 땐 이자 붙여서 쌀만 받는다. 모래쌀을 거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관이 강제로 맡기는데 힘 없는 백성이 도리 있나.

군포로 횡포를 부리는 장면도 나온다. 군포는 군역을 대신해서 내는 세금이다. 백성이 울부짖는다. "태어난 지 사흘도 안 된 이 핏덩어리한테 군포를 매긴다는 건 너무하지 않소?" 아전이 대꾸한다. "3년 전에 죽은 네 아비 군포도 걷었다. 군포 안 내면 소를 끌어갈 거니껭 그리 알라." 핏덩어리한테 물리는 군포를 황구첨정, 죽은 이한테 매기는 군포를 백골징포라 했다.

크든 작든 재난 시 구휼은 국가의 책무다. 그러라고 백성이 평소 세금을 낸다. 하지만 재난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면 되레 환곡·군포 같은 비극을 부른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사회학)는 저서 '쌀 재난 국가'에서 "환곡을 갚지 못하는 자영농은 소작농으로, 소작료를 내지 못한 소작농은 노비로 전락하는 수순을 밟았다…부농은 대지주가 되고, 천석꾼은 만석꾼이 되었다"고 말한다.

20여년 전 IMF 외환위기는 대형 재난이다. 그러나 구휼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그런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각자도생에 맡겨졌다. 고질병 소득 양극화가 이때 생겼다. 이 병이 더 깊어졌다.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손실보상안 제안 기자회견에서 내수활성화를 위한 조치와 손실보상안 신속 검토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손실보상안 제안 기자회견에서 내수활성화를 위한 조치와 손실보상안 신속 검토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코로나가 할퀴고 드러낸 상처가 매우 깊다"고 말했다. "코로나 격차 속에서 불평등이 더욱 심화됐다" "승자가 되는 업종과 기업이 있는 반면 밀려나는 업종과 기업이 있다"고 말했다. 진보, 보수를 떠나 코로나 이후 양극화 심화는 우리 모두 고민할 대목이다.

한국은행은 숫자로 말한다. '코로나가 가계소득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2·4~4·4분기 소득상위 20%, 곧 부자는 소득이 전년동기비 1.5% 주는 데 그쳤다. 반면 소득하위 20%, 곧 빈곤층은 17% 급감했다. 그렇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에 아주 흉측한 자국을 남겼다.

이걸 어째야 하나. 이철승 교수가 해법을 제시한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복합재난은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의 법칙을 노골적으로 소환한다"고 말한다. 다행히 다른 점도 있다. 지금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들을 위한 보다 강력한 제도적 기제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왕과 교회의 선의가 아니라 국가 법 체계의 일부다.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의 분배시스템'이다.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건강하게 작동하는 구휼시스템, 곧 복지국가 제도를 갖추는 데 실패했다. 연금, 의료, 아동복지 등 일부 진전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은 각자도생에 제 삶을 맡기는 저부담·저복지 국가다.

내년 3월이면 대선이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여야가 코로나 상처를 치유하는 방안을 같이 고민하기 바란다. 재난지원금 같은 일회용 땜질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스웨덴식 복지국가가 모델이다. 자연 세금 이야기도 나올 것이다.
복지엔 돈이 드니까. 백성이 힘들 때 토실토실한 쌀을 내주는 21세기형 환곡시스템을 소망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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