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숟가락도 잘 못 드는 뇌전이 폐암, 치료제 있어도 못 쓰는 이유 [Weekend 헬스]

홍석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21 04:00

수정 2021.05.21 09:06

EGFR 변이 폐암 환자 20%
폐암 진단시부터 뇌전이 동반
두통에 말투 어눌해지고 잘 못 걸어 삶의 질 ‘뚝’
유일한 치료제 ‘타그리소’
환자들 비싼 가격에 엄두도 못 내
1차 치료 보험급여 논의는 하세월
폐암 환자 A씨는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고 큰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가던 중 어느 날부터 두통이 잦아지고 걸음걸이가 불편해졌으며 말투까지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찾은 병원에서 A씨는 '폐암이 뇌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뇌전이에 효과 있는 치료제는 비급여로, 한 달 약 6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했다. 1년 약값만 7000만원. A씨는 앞으로 이 약값을 어떻게 대야 할지 막막하다.

■뇌전이 폐암, 환자 삶의 질 저하 심각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암 사망 원인 1위를 지켜온 폐암은 조기 발견이 쉽지 않은 데다 재발이나 전이가 많고 완치율도 낮다. 폐암 환자 80~85%는 비소세포폐암인데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인 환자의 30~40%는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다.


전이가 잦은 폐암에서도 빈번한 것이 바로 뇌전이다. A씨의 사례처럼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 5명 중 1명은 폐암 진단 시부터 뇌전이를 동반한다. 진단 시에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치료 도중 뇌전이가 발생하는 비율도 44%에 달한다.

뇌전이 폐암은 진단 시부터 4기로 간주될 만큼 예후가 불량하고 치료가 까다롭다. 특히 암이 뇌에 전이된 탓에 뇌신경학적인 손상이 발생, 구토·두통 등이 동반되고 말투가 어눌해지거나 걸음걸이가 한 쪽으로 치우쳐진다. 숟가락 들기조차 어렵다고 호소하는 환자도 있다. 증상이 심한 환자의 경우에는 '섬망'이 나타나기도 한다.

■치료제 있어도 못쓰는 뇌전이 폐암 환자

뇌전이 폐암에 효과적인 치료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기존 항암화학요법은 부작용이 많고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 또한 전뇌 방사선, 감마나이프, 수술 등의 치료를 진행하더라도 환자의 생존기간은 약 8개월 미만이다. 특히 방사선 치료는 비소세포폐암에 저항성이 높고 뇌 괴사나 위축, 치매 발생의 위험이 존재한다. 따라서 뇌전이 폐암에 대한 최선의 대처는 진단 시부터 최적의 옵션으로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다.

대규모 임상연구를 통해 뇌전이가 있는 EGFR 변이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에서 효과를 확인한 치료제는 '타그리소(오시머티닙)'가 유일하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약값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출시 4년째 보험급여 논의는 한 걸음의 진척도 없다. A씨는 "타그리소를 먹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넉넉지 않은 자식들 생각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가난이 죄'라고 한숨 쉬었다.

경제적 부담으로 타그리소를 쓸 수 없는 환자 중 일부는 'T790M 변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현재 타그리소는 이전에 EGFR-TKI로 치료에 실패하고 질병이 진행된 후 T790M 변이가 발견된 환자에게만 보험 급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환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돈 걱정 없이 암 치료에만 집중하게 도와달라'는 글을 쓰기도 하고, 폐암 환우 커뮤니티에는 '경제적 고통이 상당하지만 효과 좋은 타그리소 치료를 포기할 수 없어 얼른 급여 되기를 기도한다'는 글이 공감을 얻고 있다.

■적극 검토 약속했지만…1차 치료 급여 숙제 해결해야

정부가 암 보장성 강화 정책을 펴고 있지만 타그리소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폐암 환자 보호자가 출석, 타그리소 급여화를 호소한 것에 대해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 입장에서 타그리소는 고가약이 아니다"라며 "1차 치료제로 적극 급여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촌각을 다투는 뇌전이 폐암 환자에게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환자들의 희망고문이 계속되는 이유다.


뇌전이 폐암 환자들은 타그리소는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 유일한 치료제라고 호소한다. 다른 대안이 없는 뇌전이 폐암 환자들이 경제적인 부담을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안진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타그리소는 현재까지 개발된 표적 치료제 중 뇌전이 치료 효과가 가장 뛰어나지만 급여가 2차에 머물러 있어 1차 치료제로 환자들에게 적극 권하기가 어렵다"면서 "뇌전이 폐암은 예후가 불량하고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며 치료가 까다로워 환자, 의사 모두 뇌전이 폐암에서 최선의 치료제인 타그리소를 비용 걱정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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