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분노와 갈등만 조장해놓고 정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니면 말고라고 하기에는 주민들이 지불한 비용이 너무 크다. 예산 낭비는 물론이고 갈등과 분노도 다 그 비용에 포함될 것이다. 화장장을 만들지 말자고, 화장장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화장장이 양평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주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라고 비난하기보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더 세밀하게 주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내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주민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갖춘 미국의 경우는 어떻게 할까? 작년 초의 일이다. 우연히 캘리포니아주 칼라바사스시를 방문했다가 투표소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을 보았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 아파트 건축허가를 위한 주민투표였다. 칼라바사스시는 말리부 바닷가 근처 신흥 부자도시이다. 아파트는 거의 없고 단독주택이 많은 지역인데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 아파트 건축이 논쟁거리가 되었다. 반대하는 쪽은 도시 소음이 많아지고 교통체증이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반대했고, 찬성하는 쪽은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나누어지니 주민투표에 부쳤다. 양측 모두 주민들을 설득하는 자료들을 투표권자인 주민들에게 엄청나게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주민 삶에 영향을 주는 사안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서 행정에 반영하는 것은 시대적인 변화이다.
돌이켜보면 금융실명제나 한·미 FTA 등 굵직굵직한 정책들도 모든 국민이 찬성한 것은 아니다. 우려도 컸고 일부 국민의 반대도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이라면 반대의견이 많다고 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야 할 방향이 맞다면 추진해야 한다. 다수의 국민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 그러려면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와 주민들에 대한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정부의 리더십과 행정 능력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선행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듯이 이런 과정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갈등이 쌓이고 국민의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 최근 부동산을 둘러싼 세금정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개개인의 삶에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요즈음의 상황을 볼 때 정책의 타당성과 투명한 절차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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