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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성의 인사이트] 기본소득이 불러온 복지논쟁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02 18:02

수정 2021.06.02 18:04

[김규성의 인사이트] 기본소득이 불러온 복지논쟁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본소득을 매개로 한 복지논쟁이 불붙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일찌감치 '이재명=기본소득' 프레임을 내걸면서 논쟁을 촉발했다. 최근 차기 대통령 후보 적합도 등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가 가장 앞서 나가자 여권 대선주자들이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동시에 새로운 복지대안을 내놓고 있다. 다만 이재명 따라 하기라는 부담에 명칭은 달리했지만 큰 틀에서는 현금지원 확대가 핵심이어서 기본소득과 한 묶음인 듯하다. 야권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안심소득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해진 현금을 정기적으로 주는 제도다.
대기업 회장도, 실직자도 똑같은 금액을 준다. 보편복지다. '기본소득'류의 사회보장제도가 집권여당 주도의 대선 논쟁거리로 부상한 것은 이례적이다. 민주, 통일 등 거대담론과 비교했을 땐 생활형 공약이다. 더구나 기본소득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색 짙은 정책이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잠깐 담론으로 등장한 적은 있다.

기본소득의 대두는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욕구를 정치권이 감지해서다. 코로나19 확산과 지속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양극화 심화, 일자리 감소, 가족관계 약화 등에 따른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 지난해 코로나 확산 속 전체 가구에 최대 100만원이 지급됐던 1차 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도 일조했다. 현금성 복지도 "못할 게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기본소득 공방은 또 다른 사회보장제도도 무대 위에 올렸다. 변양호 전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전직 경제관련 고위관료 5명이 최근 발간한 '경제정책 어젠다 2022'에서 제안한 '부(負)의 소득세'다. 세금을 낼 형편이 못 되는 일정 소득 이하에는 마이너스 소득세(보조금)를 지급하고,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는 누진과세를 하는 형태다. 소득이 적을수록 지원을 더 해주는 선별복지 방식이다. 소득기준선(중위소득)에 못 미치는 계층만 지원하겠다는 안심소득은 부의 소득세와 궤를 같이한다.

복지제도에 대한 백가쟁명식 논쟁은 시대 흐름으로 봤을 땐 당연하다. '돈도 없는데, 말이 안된다'며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된다. 안심소득, 기본자산제 등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민심이 필요로 한다는 신호다. 대전제는 있다. 세밀한 검증과 사회적 토론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재원부분이다. 기본소득이나 부의 소득세는 결국 재정이 문제다. 전 국민에게 월 10만원만 줘도 연간 62조원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에게 월 50만원을 준다고 하면 연간 300조원 정도가 든다. 안심소득도 연간 최대 31조원가량이 추가로 필요하다. 현재의 국민기초생활제도 등 기존의 복지지원을 통합해 재원을 마련하든 소득세 인상, 토지보유세·데이터세 신설 등 증세를 하든 방안이 같이 논의돼야 한다. 대선이 되레 좋은 논쟁의 장이 될 수 있다.

2014년 송파 세모녀 사건은 서울 한복판에서도 굶어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충격적 사건이었다. 복지 사각지대라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치명적 단점을 노출시켰다. 이후 코로나 사태도 겪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단 표만 얻기 위한 '대학 안 간 젊은이에게 세계여행비 1000만원' '사회초년생에게 1억원' 등 단발성 현금지원책은 경계한다. 보편적이든 선별적이든 국가재정여건을 고려해 우리 실정에 맞고 지속가능한 새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표퓰리즘의 득세는 사회적 합의에 도움이 안 된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콘텐츠기획·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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