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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차등분권’ 시대를 열자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03 18:00

수정 2021.06.03 18:00

[강남시선] ‘차등분권’ 시대를 열자
"지금까지 획일적으로 추진했던 자치분권은 지양하고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차등분권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사문화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자치분권 및 균형발전담론을 회복하기 위한 차등분권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수도권 신도시 개발과 광역철도망 건설 등 수도권 집중 정책이 지속되면서 균형발전에 제동이 걸려서다.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현상은 날로 가속화하고 있는 데다 백약이 무효다. 정원 미달로 고통받고 있는 지방대학의 위기는 지역 소멸의 대표적 경고음이다. 집값 잡으려다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정책만 양산한 결과다.


기껏 지방의 행정·재정적 권한을 준다는 목표로 추진한 특례시도 지역 간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4개 도시에 특례시 명칭을 부여했다. 창원, 수원, 고양, 용인 등 4곳을 선정했다. 지역 간 형평성과 획일적 기준에 따른 지방정부의 반발로 벌써부터 취지가 무색하다. 100만명이 조금 못 미치는 성남시 등 준광역급 도시의 반발은 예고된 결과다 그러나 행안부는 특례시 명칭을 부여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뿐 특례시에 걸맞은 권한 부여에는 난색을 표했다.

아직도 중앙이 지방의 일정 부분은 통제해야 한다는 권위적·위계적 발상이 강고한 탓이다. 일본처럼 차등분권의 의미를 살릴 수는 없을까. 각 지역 형편과 특성에 맞는 특례시를 추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일본의 특례시인 '지정도시'는 차등분권제도가 핵심이다. 인구기준 외에도 광역지자체에 근접한 행정기능과 역량을 갖출 경우 특례도시로 인정한다. 단순히 인구수를 기준으로 특례시를 지정하지 않는다. 인구밀도, 면적, 지자체의 행정·재정 능력 등 디양한 지역여건을 우선 고려한다.

일본의 대도시 특례제도는 각 지방의 자치능력이 다름을 인정하는 게 특징이다. 이를 기초로 각 지역의 권한을 인구 및 기타 기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하고 있다. 분권화의 목적은 지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하고, 중앙정부의 통제를 완화해 지방의 자율성과 자치역량을 강화하는 데 있다. 그런데 특례시는 이런 기본적인 원칙마저 훼손했다.

이런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추진하는 특례시는 무늬만 특례시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특례조항을 신설해 100만명 이상의 대도시 기준 외에도 행정수요를 판단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 요소다. 균형발전이라는 명분과 지방소멸에 대처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행정수요 등 특례시 기능이 필요한 지역을 발굴해 지역균형을 회복하는 일은 어떤 사안보다 시급한 과제다.

인구 기준을 80만명 또는 60만명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도 대안이다. 성남시, 부천시, 화성시, 청주시, 전주시 등 행정수요와 인구유동성이 많은 지역이 추가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역경제 회복은 물론 인구 유입도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일각에선 광역과 기초 사이에 위치한 특례시가 가뜩이나 복잡한 지방행정체계의 운영을 한층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수도권 집중 현상을 계속 방치할 경우 모든 인구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기형적 국가로 퇴행하는 건 시간문제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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