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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콜라보, 선을 넘지는 말자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06 18:00

수정 2021.06.06 18:02

[강남시선] 콜라보, 선을 넘지는 말자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팀을 이뤄 함께 작업하는 일.'

국어사전에서 찾은 '콜라보(collaboration)'의 뜻이다. 우리말로는 주로 '협력' 또는 '협업'이라고 쓴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家)는 철학자와 과학자, 예술가, 건축가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후원했다. 메디치가의 이 같은 노력 덕분에 다양한 영역이 서로 교류하고 융합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이른바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다.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기초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콜라보는 이렇게 시작됐다.

많은 기업들이 메디치 효과를 기대하며 콜라보를 진행했다. '아트 마케팅'의 시초인 앤디 워홀의 코카콜라를 활용한 작품이 콜라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최근 국내에서도 콜라보 열풍이 불고 있다. 유통, 식음료, 패션, 뷰티 업계가 서로 손잡고 소비자의 흥미를 유발하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콜라보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편의점 CU와 밀가루 업체 대한제분의 협업으로 탄생한 '곰표 밀맥주'는 완판 행진을 이어가며 콜라보 열풍에 불을 댕겼다. 맥주로 시작한 곰표 시리즈는 화장품까지 영역을 넓히며 10여종이 나왔다. 또 하이트진로는 트레이드 마크 '두꺼비'를 내세워 티셔츠, 휴대폰 케이스부터 초콜릿과 침구, 휴지까지 내놓으며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코로나19로 부진한 매출을 끌어올리고,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은 콜라보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문제는 과열 끝에 꼭 탈이 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지 못한 때문이다. 특히 재미를 강조한 '펀슈머' 마케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우유 바디워시' '유성매직 음료' '딱풀 캔디' '구두약 초콜릿' 등 일부 콜라보 제품은 어린이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이다. 어린이들이 음료인 줄 알고 매직을, 초콜릿인 줄 알고 구두약을 먹을 수 있다. "어린이나 노인, 장애인 등을 무시한 장난꾸러기 같은 감성"이라는 비판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지나친 걱정"이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어린이 사고는 부모가 보지 못하는 짧은 순간에 발생한다. 지난 2019년 어린이의 이물질 삼킴 내지 흡입 사고는 2000건에 육박했다.

유행에 편승해 돈을 버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비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다. 제 아무리 콜라보와 뉴트로가 대세라 하더라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은 확실히 구분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위험'이라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제품을 기획하는 데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잘못하면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재미로 잠시 소비자의 이목을 붙잡는 것은 순간이다. 우리 기업들이 마케팅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제품 본연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기를 바란다.
소비자로부터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길이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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