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부동산 분권이 대세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14 18:20

수정 2021.06.14 18:38

과천정부청사 부지  물거품
중앙정부 일방통행은  옛말
지자체에 더큰 권한 넘기길
[곽인찬 칼럼] 부동산 분권이 대세

주말 산행으로 경기 과천 쪽에서 관악산에 종종 오른다. 그때마다 "과천은 참 살기 좋은 동네"라고 감탄한다. 조용하다. 자연을 벗 삼기에 좋다. 과천에는 이 둘을 중시하는 분들이 많이 살 것 같다. 정부는 이 같은 시민 정서를 경시했다.
지난해 8·4 대책에서 과천청사 일대 노는 땅에 주택 4000호를 짓는 계획을 내놨다. 널찍한 공원을 꿈꾸던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김종천 시장은 주민소환투표 대상이 됐다. 화들짝 놀란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 이달 초 정부는 청사 일대 유휴부지에 청년·신혼부부용 집을 짓는다는 계획을 접었다. 그 대신 과천 다른 곳에 4300호를 짓기로 했다. 시민들도 한발 물러섰을까? 천만에. 소환투표는 예정대로 오는 30일 실시된다. 그만큼 시민을 무시한 정부 정책에 반감이 크다.

부동산 정책이 전환기를 맞았다. 과천이 깃발을 들었다. 지금껏 지자체는 정부 결정을 싫든 좋든 따랐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앞으론 일방통행이 통하지 않는다. 8·4 대책으로 영향을 받는 서울 노원구(태릉골프장), 용산구(캠프킴), 마포구(서부면허시험장), 서초구(서울지방조달청)가 죄다 반대다. 국유지, 군 부지, 공공기관 부지, 시유지라고 정부 맘대로 하려다 브레이크가 걸렸다. 여야를 떠나 선출직 지자체장들은 중앙정부보다 유권자인 주민이 먼저다.

정부주도형 부동산 정책은 수명을 다했다. 국토부가 대책을 스무번 넘게 내놨지만 시장에선 먹히지 않는다. 정부는 규제의 피라미드에 갇혔다. 대책→부작용→대책→부작용의 악순환이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봐야 시장은 콧방귀만 뀐다. 대안은 뭔가. 아예 국토부에 집중된 부동산 정책 권한을 지자체에 넘기면 어떨까.

정부과천청사 일대 노는 땅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최선인지는 과천시민들이 제일 잘 안다. 태릉골프장에 뭐가 들어서면 좋은지는 노원구민들이 제일 잘 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앙정부가 중뿔나게 나서봤자 욕만 먹는다.

대신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는 저서 '쌀 재난 국가'에서 "강남 집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의 저변에는 낮은 수준의 사회보험과 안전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복지가 부실할수록 사람들이 땅, 곧 아파트에 집착한다는 뜻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집은 확실한 노후대책이다. 서울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 두둑한 노후자금을 건질 수 있다. 이는 거꾸로 복지가 탄탄해지면 집값도 안정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균형발전을 통한 수도권 인구 감소도 마땅히 중앙정부가 할 일이다. 노무현정부 때부터 균형발전을 노래했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수도권 주민은 2019년 총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가뜩이나 좁은 땅에 콩나물 시루처럼 몰려 산다. 집값이 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달 초 민심경청 대국민 보고에서 "새로운 주택문제 해결의 혁명을 만들겠다"고 했다. '혁명' 좋다. 다만 지금처럼 중앙이 권한을 틀어쥐고 있으면 또 다른 실책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세상이 달라졌다. 30대 정당 대표가 나오는 판이다.
지자체에 권한을 넘기자. 대신 정부와 민주당은 복지와 균형발전을 통한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바란다. 이게 '혁명'이다.
이 동네 몇 채, 저 동네 몇 채 식으로 시시콜콜 공급 대책을 짜는 건 중앙정부와 집권당이 할 일이 아니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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