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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문턱 앞에… 두 번 우는 중증 건선 환자들 [Weekend 헬스]

홍석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18 04:00

수정 2021.06.18 04:00

까다로운 산정특례 기준에 좌절
재등록하려면 기존 치료 끊고
질병 악화 증명해야 하는 것도 문제
건보공단 "연말까지 새 기준 마련"
지난 9일 건선환자 단체인 한국건선협회가 강원도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옥 앞에서 산정특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면서 건선과 산정특례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산정특례는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제도'의 줄임말로, 진료비 본인부담이 높은 암 등 중증질환자와 희귀질환자, 중증난치질환자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경감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 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중증건선을 중증난치질환 산정특례 대상 질환으로 지정, 신규 및 재등록 기준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산정특례에 등록된 환자들은 치료제의 10%만 부담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유독 중증건선에 대한 산정특례 등록이 까다로워 환자단체들이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전신에 영향 미칠 수 있는 면역 질환 건선

환자들이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는 건선의 고통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건선은 피부가 붉어지는 홍반 증상과 하얀 각질이 일어나는 인설이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힌다.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 증상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보니 건선을 단순한 피부 질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건선은 면역 체계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여 온 몸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전신 염증성 질환이다.

건선 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만성적인 염증성 질환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건선이 당뇨병, 심혈관계질환, 고지혈증 등 전신적 합병증의 발병 확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 또한 꾸준히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특히 건선의 동반질환 중 가장 대표적인 '건선관절염'은 건선 환자 10명 중 1명이 겪을 정도로 흔히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선관절염은 손발가락, 척추, 말초관절 등에 발병해 부종과 통증을 유발하며,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시 영구적인 관절 손상을 유발할 수도 있다.

■피부 개선에 동반질환 관리까지…생물학적제제로 치료

건선은 난치성 질환으로 알려져 왔으나 생물학적제제가 등장하면서 높은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건선은 발생 부위, 중증도 등에 따라 국소 치료, 광선 치료,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전신 치료 등을 시도하게 되는데, 생물학적제제 치료는 기존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했던 중증건선 환자에도 상당한 개선 효과를 나타냈다.

특히 가장 최근에 등장한 인터루킨 억제제는 생물학적제제 중에서도 높은 치료 효과로 건선의 완전치료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주목을 받았다. 현재 국내에는 우스테키누맙(12/23 억제제), 세쿠키누맙(17 억제제), 익세키주맙(17 억제제), 구셀쿠맙(23 억제제), 리산키주맙(23 억제제) 등 총 5개 인터루킨 억제제가 허가돼 있다. 이들 치료제는 피부 개선뿐 아니라 건선의 동반질환 관리에도 효과를 보이며 건선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다.

■건선에만 유독 까다로운 산정특례 등록 기준

이처럼 생물학적제제는 건선의 다양한 양상에 높은 치료 효과가 입증됐지만 까다로운 급여 기준으로 인해 혜택을 받지 못 하는 환자들이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중증건선 치료에 쓰이는 생물학적제제에 대한 요양급여는 △3개월간의 건선 전신치료제(메토트렉세이트, 사이클로스포린) 치료 또는 △3개월간의 광선(UVB, PUVA) 치료 중, 한가지를 받았음에도 침범 체표면적 10%, 건선 중증도 지수(PASI) 점수 10점 이상인 경우에 인정된다.

다만 산정특례의 경우 두 가지 치료를 모두 받았음에도 침범 체표면적 10%, PASI 점수 10점 이상이거나 혹은 환자가 부작용으로 인해 전신치료 또는 광선치료를 3개월 간 지속할 수 없는 경우에는 둘 중 가능한 한 가지 치료를 선택해 6개월 간 받은 후 마찬가지로 침범 체표면적 10%, PASI 점수 10점 이상의 임상 소견을 받은 경우에만 적용 받을 수 있다. 결국 산정특례 등록을 위해서는 6개월 동안 기존 치료를 모두 받은 후에 효과를 거의 보지 못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생물학적제제를 사용하는 다른 질환의 산정특례 기준과 비교해 보아도 건선의 산정특례 기준이 유독 높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실제 올해 초에 산정특례가 신설된 중증 아토피성 피부염의 경우를 살펴 보면, 기존 요양급여로 생물학적제제 치료를 받던 환자에게 산정특례를 적용해 주고 있다. 건강보험 급여 기준과 산정특례 적용 기준이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재등록 심의 과정이다. 중증건선으로 산정특례를 지속적으로 받으려면 5년 마다 한번씩 재등록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 기준에 따르면, 산정특례 적용기간 만료 직전 1년 이내에 생물학적제제 치료를 중단한 이후에 건선 전신 치료(메토트렉세이트, 사이클로스포린 등) 중 한가지 이상의 치료를 도합 3개월 이상 받았음에도 침범 체표면적 5%, PASI 점수 5점 이상이어야 재등록을 할 수 있다.
환자들은 치료를 잘 받고 있는 도중에 갑작스럽게 치료를 중단하고 다시 병이 악화됐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일산백병원 피부과 박혜진 교수는 "산정특례 재등록을 위해 잘 치료를 받는 중임에도 갑자기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또한 효과가 없어 다른 약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있는데 산정특례 재등록 이유로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중증 보통건선 신규 등록기준은 현행을 유지하는 대신 올해 연말까지 새로운 재 등록기준을 마련해, 중증 건선환자가 치료 중단 없이 재 등록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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