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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소비자에 믿음 주는 것은 결국 '진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21 18:01

수정 2021.06.21 18:01

[테헤란로] 소비자에 믿음 주는 것은 결국 '진심'
지난달 70대 노신사가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사과했다. 아버지 고 홍두영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남양유업을 이끌어왔던 홍원식 회장이다. 그는 "불가리스 논란으로 실망하시고, 분노하셨을 모든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유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발표를 한 지 3주 지나서였다.

진심 어린 사과가 조금 빨랐으면 어땠을까. 이보다 앞서 남양유업은 발표 직후 논란이 제기되자 "임상실험이 아닌, 세포단계 실험임에도 소비자에게 코로나 관련 오해를 불러일으켜 죄송하다"며 세 줄짜리 면피용 사과문을 낸 적이 있다. 당시 주가는 이미 큰 폭 오른 상태였고, 마트에서는 불가리스가 동이 나는 상황이었다.
내용을 받아들이는 자가 잘못 받아들였다는 '오해'라는 표현에 '괘씸죄'가 더 붙었다.

이 같은 상황을 지난 2000년 일본의 유제품기업 유키지루시도 똑같이 겪은 바 있다. 그해 6월 유키지루시 저지방 우유를 마신 후 식중독 환자가 늘어났으나 회사 측은 즉각적인 사과보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잘못을 인정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시간을 끌기에 바빴다. 그 회사 사장은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저도 지금 한가하게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꾸하면서 반감을 더욱 키웠다. 같은 해 7월 식중독자 수가 불어났고, 결국 사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후 환자가 1만명을 돌파하자 모든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1만4000여명이 식중독 증세를 보였고, 1명이 사망한 바 있다.

유키지루시는 2년 뒤인 2002년에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호주산 수입 쇠고기를 국산(일본산) 쇠고기로 둔갑시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실패했고, 파산의 길을 걷게 됐다.

일련의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공통된 교훈은 '소비자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사람도 위기 상황에서 진가 또는 바닥이 보이듯, 기업도 위기 상황에서 평소 기업이 소비자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잘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식품기업에 더 깐깐한 잣대를 들이댄다. 어느 정도는 '완전 무결'을 지향해야 하는 그들의 고충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식품과 관련해선 아무리 깐깐해도 모자람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식품기업에 높은 도덕성과 신뢰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과거와 달라졌다. 이슈가 있는 경우 인터넷으로 빠르게 접하고, SNS 등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위기 대응 시 이전보다 신속한 대응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려는 면피용 사과와 진심 어린 사과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2013년 대리점 갑질 이슈, 2019년 홍 회장의 외조카 황하나씨 논란 등 지켜보기에도 위태위태하던 남양유업은 결국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에 3107억원에 매각됐다.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에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이사회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효율화에 나서기로 했다. 아울러 투자를 통해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높일 방침이다.
새 주인의 품에서 달라진 남양유업을 기대해본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생활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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