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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특급논설] 윤석열 출사표, 아쉽다

검투사 말투로 일관
통합 정치는 쏙 빠져
좌우 양쪽 아우르는
큰정치인 변신 기대


[곽인찬의 특급논설] 윤석열 출사표, 아쉽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국민 약탈'을 막고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님, 6.29 데뷔전 방송을 보니 인파가 대단합니다. 여느 아이돌 스타 못지않더라구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윤 전 총장이 저렇게 지지도가 높은 것은 우리가 반성할 요소"라고 했다죠? "오죽 우리가 미우면 검찰총장으로 일생을 보낸 분이 지지도가 저렇게 높게 나오겠느냐"면서요.

데뷔전, 저도 시원하게 잘 봤습니다. 역시 검투사답습니다. 칼로 찌르는 통쾌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인 윤석열은 아직 덜 다듬어졌구나"라는 염려도 들었습니다.

'정치참여 선언문'에 나온 단어를 한번 볼까요. 먼저 명사입니다. 좌절, 분노, 무도, 이권 카르텔, 권력 사유화, 먹이사슬, 국민약탈, 전쟁, 혁명, 낙오, 오만, 망상, 고통, 신음, 집권연장, 기만, 거짓 선동, 부패, 무능, 개악, 파괴, 독재, 전제, 선동가, 부패완판, 역사, 죄, 권력자 등입니다. 동사는 내팽개치다, 짓밟다, 판치다, 빼앗기다, 기죽다 등이 보이네요. 부사·형용사는 기필코, 도저히, 반드시, 절대로, 분명한, 확고한, 뻔히, 확실하게 등이 쓰였습니다.

한마디로 셉니다.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면 저만 그런 걸까요? 정치인, 그것도 대권을 꿈꾸는 이가 국민이 관중인 기자회견장에서 쓰기엔 부적절한 단어들이 여럿 보입니다. 물론 효과는 봤습니다. '정치인 윤석열'이 반문 캠프의 '대장주'라는 강렬한 인상을 심었으니까요.

그러나 통합이라는 잣대를 대면 데뷔전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을 주거든요. 문재인 대통령은 통합의 정치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취임사에서 "감히 약속드린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감히 말하건대 이 약속은 빈말이 됐습니다. 문 정부는 임기 내내 이념 편향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윤 전 총장님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2022년 한국에 필요한 지도자는 통합의 정치인이라고 믿습니다. 흔히 새는 좌우 양쪽 날개로 난다고 하죠. 한쪽 날개론 멀리 날아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윤석열은 통합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첫 무대만 보면 부정적입니다.

요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1980년 신군부 쿠데타의 혼란 속에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권력을 잡은 뒤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김 대통령은 1997년 당선인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고,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초인적인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정치·사회철학자 이진우 교수(포스텍 석좌교수)는 "중간에 서야 비로소 좌우가 보이고 비로소 올바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보면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극단으로 보이지만 중간에서는 상대를 경쟁적 대안으로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중간에 서야 좌우가 보인다'). 좌파이지만 우파적 문제의식을 인정하는 우파적 좌파, 우파이지만 좌파의 대안을 포용하는 좌파적 우파가 서로 대화하는 건강한 '정치적 중도 문화'를 꽃피우는 것이 이 교수의 희망입니다.

이 시대 유권자들은 과연 투사형 대선 후보를 바랄까요? 아닐 겁니다. 정치판 싸움은 이제 신물이 나거든요. 적어도 제가 바라는 건 일자리와 집 난제를 풀 민생 해결사입니다. 싸움꾼이 아니라 한국형 복지의 틀을 잡도리할 슬기로운 정치인입니다.

윤 전 총장님도 "정치는 국민들이 먹고 사는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재인 정권 비판은 약발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유권자들은 이내 "그렇다면 당신의 민생 콘텐츠는 뭔가?"라고 묻기 시작할 겁니다.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삼국지를 보면 촉나라 제갈량이 출사표를 내고 위나라 북벌에 나섭니다. 그러나 매번 실패합니다. 제갈량은 사통팔달 중원에 위치한 형주를 오나라에 빼앗긴 것을 한탄합니다. 가운데 땅 형주가 없으니 서쪽에서 북쪽까지 병력 이동이며 군량 수송이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중원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양쪽 끝보다 몸통을 잡아야 합니다. 거기가 표밭입니다.

한국 정치 생태계에서 통합의 정치는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는 마음으로 좌우 양쪽을 아우르는 큰 정치인을 고대합니다. 내년 3월 대선이 멀지 않았습니다. 윤 전 총장님의 건승을 빕니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윤석열 출사표, 아쉽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