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샤워실의 바보가 만든 괴물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01 18:05

수정 2021.07.01 18:05

[강남시선] 샤워실의 바보가 만든 괴물
출근길에 무심코 아내에게 "오늘은 일찍 들어올게"라고 했다가 지키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괜히 섣부른 약속을 했다고 후회한다. 얼마 전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재개발 현장 붕괴사고처럼 참사 때마다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린다. 아침에 잔소리를 듣고 나갔던 생때같은 고등학생 딸과 이별을 한 어머니. 자존심 싸움에 연락을 끊었다가 연인을 허무하게 보낸 이들. 변변한 여행 한번 모시지 못했던 팔순 노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땅을 치는 자식들. 인생은 끝없는 회한의 연속이다. 의도를 했든 안했든 결과의 부메랑에 인간은 늘 상처입는다.

류시화 작가의 잠언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스테디셀러가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정권 말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보면 딱 류 작가의 책이 어른거린다. 요즘 여당의 부동산정책은 극한의 갈지자 행보다. 규제를 최상의 가치로 떠받들었던 그들이 변했다. 당장 웬만한 부동산 세제를 다 풀어줄 판이다. 재산세 특례 기준을 주택 공시가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렸다. 절대 타협은 없다던 종합부동산세는 공시가 상위 2%로 완화했다. 부자감세 비판이 당 안팎에서 쏟아졌지만 후진은 없어 보인다. 1주택자 양도소득세 면제 기준도 공시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렸다. 그래봤자 시장은 꿈쩍도 안한다.

대출 제도는 더 가관이다. 영끌과 빚투 막겠다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차주별 40%로 제한하면서, 한쪽에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우대 대상을 9억원까지 상향했다. 대출을 잡겠다는 건지, 아닌지 헷갈린다.

부동산 참사의 근본원인은 수도권 공급부족이다. 정권도 이제서야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그런데 뜬구름만 잡고 있다. 이런저런 대책으로 수도권 공급계획 물량은 어느새 200만호를 넘어섰다. 실제 분양까지 시차를 감안해도 이 정도면 집값은 진작에 하락 신호가 켜졌어야 했다. 급기야 여당 대표는 자기자본 6%로 누구나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판타지 정책까지 내놨다. 과천 유휴지에 청년임대주택을 지으려던 계획은 주민소환에 부딪히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역시나 선거 앞에 장사는 없다.

뜨거운 물과 찬물 틀기를 반복하는 '샤워실의 바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경기과열이나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어설픈 시장개입을 진작에 경고했다. 이제는 정부가 뭘 해도 부동산 시장은 콧방귀도 안뀐다. 정부가 시장에 제대로 낙인 찍혔다. 4년간 수도권 민간공급의 수도꼭지를 꽁꽁 틀어막았던 결과다. 정책자들도 항변할 것이다.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미국도 일년 새 집값이 15% 급등했다. 이를 두고, 자산거품을 경고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100년간 없었고, 설명되지 않는 특별한 상황"이라고. 집값 과열은 글로벌 주요 도시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대출 부담이 없고 금리는 낮으니 돈이 자산시장으로 몰리는 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집값이 급등한 글로벌 국가들은 우리처럼 집요한 수요억제책은 없었다.
적어도 현 정권의 마지막 날까지 집값 하락을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얼마나 더 오르느냐만 남았다.
스무 번이 넘는 헛발질이 부동산시장을 통제불능의 괴물로 만들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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