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김규성의 인사이트] '돈풀기'의 정치학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07 18:24

수정 2021.07.07 18:24

[김규성의 인사이트] '돈풀기'의 정치학
한국은행은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과연 올릴 수 있을까. 한은은 이주열 총재가 지난 5월 말부터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6월 24일 이 총재는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고, 금리를 한두 번 올린다고 해도 통화정책은 여전히 완화적"이라는 발언으로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한은의 이 같은 입장은 코로나19 위기국면에서 확대된 재정, 인플레이션 우려, 경기회복세 등이 겹치면서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전반에 낀 거품을 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발(發) 멘트는 밋밋하다. 금리 인상·인하 여부는 물론 시기 등에 대해 직접적 표현은 삼간다. 이 총재가 선택한 문구는 그런 면에서 직설적이고 단정적이다.
이례적이면서도 의지가 강하다. 시장도 그렇게 생각할까. 주가 움직임 등을 감안하면 "올해 안에 과연…" 정도의 인식이 우세해 보인다.

금리인상은 선호도가 높지 않은 정책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19년간(1951~1970년) 맡았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는 "(금리를 올리는)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일 때 '펀치볼'을 치우는 것"이라고 했다. 펀치볼은 과일과 술이 섞인 칵테일을 담은 그릇이다. 파티가 무르익을 때 집에 가라고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한은 행보에 대한 의구심은 한은의 신뢰도 문제라기보다는 대선을 앞둔 시기적 특성 때문이다. 내년에는 대통령,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연이어 있다. 금리인상은 표심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아니다. 한은이 금리인상 카드를 꺼냈지만 선거를 앞둔 현 정권으로선 쉬운 선택지가 아닌 것이다. 대출이자 증가는 표심을 갉아먹을 수 있다. 정부 움직임은 예상대로였다. 지난 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 총재가 만나 "정교한 조화가 중요하다"는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책공조'를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한은의, 재정과 통화 정책의 공조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말뿐인 공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한쪽에선 '돈을 풀려고' 하고, 다른 쪽에선 '돈을 죄려는' 입장이어서다. 실제 정부와 여당은 세출 증액 규모로 사상 최대인 33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반면 한은은 연내 금리인상 의지를 표명했다. 정책 충돌은 정부 내에서 또 있다. 정부는 급속도로 팽창 중인 가계부채 안정화를 위해 이달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를 시작했지만, 동시에 저신용자 대출 확대 정책도 펴고 있다.

돈줄 죄기보다 돈풀기가 표를 긁어모으기에는 유리하다. 다만 부채 경고등의 색깔이 짙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가계부채 리스크 현황과 선제적 관리 방안'보고서에 따르면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9년 말 83.4%에서 올해 1·4분기 말 90.3%로 상승했다.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도 문재인정부 첫해 36%에서 내년 51%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경제주체 모두 빚에 짓눌린 형국이다.

과거 위기를 분석했을 때, 어떤 형태로든 과도하게 누적된 부채가 불씨가 됐다. 가계부채 중 상당부분은 부동산, 주식, 가상자산으로 흘러갔다. 자산거품이 곳곳에서 부풀고 있다. 빚으로 쌓은 버블이 선거국면과 맞물리는 상황을 우려한다.
가계부채,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이 시급하다.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금리를 인상하고, 인플레를 통제하는 재정·통화 정책을 기대한다.
'엇박자'를 최소화한 정책조합이 나온다면 한껏 박수 칠 준비가 돼 있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콘텐츠기획·부국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