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기울어진 운동장 국민연금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12 18:12

수정 2021.07.12 19:33

베이비부머에 유리한 구조
이러다 청년세대 불만 폭발
유력 대선주자가 총대 메길
[곽인찬 칼럼] 기울어진 운동장 국민연금
청년에게 한국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고용을 보자.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은 하늘의 별 따기다. 기득권 노조가 철옹성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은 만성적이다. 집을 보자. 서울은 언감생심, 월급 착실히 모아봤자 수도권도 넘보기 힘들다. 일자리와 주거가 불안한 청년에게 연애와 결혼, 출산은 사치일 뿐이다.


청년들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 같다.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낑낑 밀어올리지만 바위는 곧 굴러떨어지고 만다. 신이 내린 영원한 형벌이다. 시시포스는 신을 기만한 죄라도 지었지, 청년들은 베이비붐 세대보다 늦게 태어난 죄밖에 없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국민연금이 있다. 지금은 기금이 884조원(4월 말) 쌓였다. 이 돈이 눈 녹듯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나 같은 베이비붐 세대가 속속 은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금은 2042년 적자로 돌아선다. 불과 21년 뒤다. 2057년 가면 아예 바닥을 드러낸다. 36년 뒤다. 그 다음부턴 그해 걷은 보험료를 그해 보험금으로 지급한다. 모자라면? 별수 있나, 예산에 손을 대거나 보험료율을 올리는 수밖에. 그 부담을 현 10대, 20대가 져야 한다.

가뜩이나 힘든 젊은이들한테 차마 못할 짓이다. 국민연금 개혁의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정부도 시늉은 했다. 국민연금은 5년마다 재정계산을 한다. 일종의 건강검진이다. 문 정부도 2018년 검진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15%로 올리는 처방을 내놨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복지부는 부랴부랴 수정안을 마련했고, 그렇게 만든 물렁한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곤 손을 털었다. 정부가 이리 무성의한데 국회라고 열의가 솟겠는가. 공을 넘겨받은 국회는 개혁의 'ㄱ'자도 꺼내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들어 국민연금 개혁은 진척이 없다. 사진은 전북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전경./사진=뉴스1
문재인정부 들어 국민연금 개혁은 진척이 없다. 사진은 전북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전경./사진=뉴스1

노무현 대통령이 이끌던 참여정부는 달랐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에 에너지를 쏟았다. 당시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진동한동 국회를 뛰어다녔다. 그때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2028년)로 점차 낮춘다는 결정이 이뤄졌다. 이를 두고 보험료율(9%)을 건드리지 않은 반쪽 개혁이란 평가가 있다. 하지만 그 덕에 기금 소진 시기가 2047년에서 2060년으로 13년 연장됐다(2018년 재정계산에서 2057년으로 3년 단축). 돌이켜 보면 이 정도 손을 댄 것만도 대단하다.

얼마 전 행정안전부는 6월 말 기준 60대 인구 비중이 13.5%로, 처음으로 20대와 30대 비중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50대는 60대보다 더 많다. 내가 청년이라면 숨이 콱 막힐 것 같다. 이 숨통을 트려면 50~60대의 양보가 불가피하다. 세대 갈등을 연구한 서강대 이철승 교수(사회학)는 "현 연금 구조에서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는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 내내 윗세대의 연금을 감당하다가, 자신들이 은퇴하는 순간에는 연금이 소진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불평등의 세대')고 주장한다.

문 정부는 손을 놨다. 이제 믿을 건 대선뿐이다. 지난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청년층이 한데 뭉쳐 목소리를 냈다. 정치권도 바싹 긴장한 눈치다.
내년 3월 대선에서 청년층 표는 당락을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유력후보 중 누군가 국민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길 바란다.
연금을 손보겠다고 하면 나는 그 대선주자에게 듬뿍 가점을 주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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