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완전한 행복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25 19:31

수정 2021.07.25 19:31

[강남시선] 완전한 행복
언젠가부터 사회로부터 수상쩍은 징후가 출몰하고 았다. 하나는 과도한 행복의 찬양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연한 행복권에 대한 침해다. 이 두 현상이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행복에 대한 왜곡된 신념을 표출한다. 대개 사회적 징후는 은폐돼 있던 사실과 진리를 얼핏 보여준다는 점에서 성실한 독해를 요구한다. 과도한 자기애와 행복에 대한 무분별한 찬양은 타인의 행복은 곧잘 무시되고 배제해야 할 무엇으로 치부한다.

그러니까 행복담론에 포박된 현대인들은 행복강박증 환자들로 인식되는 법이다.
행복담론은 자신만이 특별한 존재로 마땅히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부추긴다. 즉 불행은 죄악이다. 행복의 절대성을 강조할수록 타인과의 접촉면은 사라지고, 의미와 맥락은 탈각된 형해화된 개별성만 남는다.

소설가 정유정이 최근 펴낸 '완전한 행복'이라는 소설은 행복의 이중성과 과잉집착에 따른 비극적 결말이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과 부딪치는 순간 발생하는 잡음과 부작용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누구든 내 행복을 방해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과잉된 자기애와 자존감이 비극의 출발이다. 행복의 집착은 종종 자신을 자기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위험한 나르시시스트'로 전락한다.

행복은 덧셈이 아닌 뺄셈으로 구현된다고 보는 그릇된 사회적 욕망도 이런 환경에서 싹튼다. 세속적 성공에 필요한 잉여물을 제거하는 것이 완전한 행복을 이루는 첩경이라고 믿어서 그렇다. 행복을 태도가 아닌 소유로 취급할 때 이런 현상은 가속화한다.

다만 행복을 침해하는 건 개인과 타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힘센 무엇이 행복을 침해한다면. 코로나19에 대한 방역당국의 조치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감염공포가 커지면서 지난 1년반 동안 우리는 매일 국가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전대미문의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 수 통계는 공포심을 유발하고, 이는 사회적 통제로 활용된다. 감염공포증을 이유로 매일 우리의 행복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왠지 찜찜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데도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백신 예방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방증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일 코로나가 일반감기처럼 인간과 공생해야 할 바이러스라면 어떨까. 더구나 1년도 안돼 급조해 개발한 백신의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왜 생략하는가. 앵무새처럼 안전하다는 백신 제약업계의 말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는 게 방역당국의 역할인가. 백신 만능주의는 제약업계의 논리일 뿐이다. 독감백신도 예방률이 40%에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신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할 비과학적 태도다.

영국은 코로나19는 앞으로 같이 가야 할 바이러스라고 선언하며 지난 19일 사회적 통제를 풀었다. 감염력은 강하지만 사망률은 극히 낮은 바이러스를 놓고 일상생활을 대놓고 침범하고 통제하는 건 너무 심한 처사다.
상식선에서 일반감기도 코로나19처럼 매일 확진자 수를 공개하면 어떤 상항이 벌어질까. 행복권을 버젓이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우리 국민은 너무 순종적이다. 주입식 교육의 효과일까. 설령 국가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것이 더 이상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 해도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순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근본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자유도 안전도 보장받을 자격이 없다"고 역설했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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