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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공공 분야에 '수요자 중심주의' 도입해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28 18:09

수정 2021.07.28 18:09

[fn광장] 공공 분야에 '수요자 중심주의' 도입해야
'고객은 왕이다!'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수요자 중심주의는 영리기업 분야에서는 하나의 철칙으로 자리 잡았다. 수요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기업으로서는 당연한 원칙이다. 고객만족경영은 수요자의 욕구를 세심히 알아내고 충족시킴으로써 생존하고자 하는 기업의 필사적 전략이다.

영리 분야와 다르게 공공 분야에서는 아직도 공급자 중심적인 행태를 흔히 볼 수 있다. 가령 사회복지 분야에서 정부 예산지원은 대부분 기관의 종류와 종사자 수 등에 따라 일률적으로 배분된다. 기관이 하는 복지서비스가 수요자의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고려는 없다.
수요자는 선택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공급자의 처분에 맡겨야 하는 형국이다.

재난지원금의 경우 설왕설래 끝에 결국 국민 88%에게 25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논의 과정은 공급자의 정치적 이해득실로 점철됐지, 어디에서도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이 고려된 흔적은 찾기 힘들다. 전체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세금 많이 낸 게 무슨 죄라고 굳이 골라 빼느냐"고 비판한다지만, 더 어려운 처지의 국민에게 몰아서 더 후하게 지원하는 것이 수요자의 욕구에 오히려 맞는 방향일 수도 있다.

내년 대선의 주요 공약 이슈로 대두하고 있는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기본소득의 원래 논리 중 하나는 기존 복지서비스는 대폭 정리해 모두 현금으로 지급해서 수요자인 국민이 스스로 선택해 필요한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복지관에서 보면 파격적인 수요자 중심적인 제안이다. 2016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이유 중 하나는 취약계층의 복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런데 현재 정치권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오히려 '기존의 복지제도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기본소득을 더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분히 표심을 염두에 둔 공급자 중심적인 행태다.

대학도 공급자 중심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다. 시대적 상황과 현장은 융합적 사고와 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지만, 대학에서 학과의 담벼락은 너무 높고, 공고하다. 학과별 정원규정에 묶여 현장이 요구하는 전공분야의 정원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학과와 교수의 전공분야 이익을 우선하는 공급자 중심주의 때문이다.

필자가 속한 대학에서는 새로운 교과목을 개설할 때 그 내용을 공지하고 모든 학문 단위에서 의견을 받는다. 이때 특정 교과목의 명칭에 대한 반대 의견이 가끔 있다. 가령 교과목명에 A라는 단어를 썼으면 그 단어는 우리 학문 분야에서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다. 새 연구소의 명칭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수요자의 처지에서는 어느 학문 분야에서 다루건 잘 가르치고 연구하는 쪽을 선택하면 될 터인데, 공급자의 밥그릇 지키기는 너무 공고하다.

공공 분야에서 공급자 중심주의가 만연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선택의 제한성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A라는 제품이 맘에 안 들면 바로 B라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지만, 공공 분야에서는 그렇게 선택하기 힘든 구조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공 분야는 국민의 세금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국민을 중심에 둔 수요자 중심주의가 오히려 공공분야에 더 중요한 이유다.
공급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주의로 대대적인 개혁이 공공 분야에 필요한 때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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