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안쓰럽기만 한 '집값 경고론'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15 18:12

수정 2021.08.15 18:12

[강남시선] 안쓰럽기만 한 '집값 경고론'
정권 말 정부의 '집값 경고론'이 눈물겹다. 이쯤이면 정부가 '26번째 부동산대책'으로 대국민 심리전을 택한 것 같다. 심리전의 총대는 한국은행이 맡았다.

한은은 지난 6월 '2021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내고 집값 고점론의 불씨를 지폈다. '주택가격 하방리스크(HaR·House price at Risk)'가 올 1·4분기 -0.9%라는 수치가 핵심. 저금리 환경에 변동이 있을 경우 분기당 집값이 최소 0.9%씩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한은의 HaR은 12년 만에 최저치다.
HaR 악화의 근거는 소득과 대출의 금융불균형이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대출은 늘어나니 대내외 충격 시 주택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할 환경이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집값 과열의 척도로 사용되는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을 보자. 지난해 4·4분기 기준 한국의 PIR은 112.7로 미국, 독일, 영국보다 일년 새 2배 치솟았다. 올 1·4분기 KB국민은행 기준 PIR로 보면 서울은 17.8이다.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월급 한푼 안 쓰고 17.8년을 모아야 중간 가격의 집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연봉 6000만원 가구가 18년을 모으면 10억원이 조금 넘는다. 올해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과 엇비슷하다.

한은의 보고서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김부겸 국무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노형욱 국토부 장관 등 경제수장들은 집값 경고론을 날렸다. '지금 집 샀다가는 큰일난다'는 으름장이 재방송되고 있다.

한은과 고위 관료들은 지금이 2008년 금융위기의 단초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전조쯤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진심인지, 단순 협박성인지 진위는 모르겠다. 잇단 경고에 시장은 어땠을까. 경고론 이후 두 달간 집값은 역대급 상승폭을 찍고 있다. 이달 둘째 주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3%로 9년3개월 만에 최고치다. 서울은 20개월 만에 주간 상승폭이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시키면 반대로 하겠다"는 청개구리 논리가 부동산 시장을 잠식한 상황이다. 새내기인 노 장관은 취임 초부터 "2~3년 뒤에 집값이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론을 띄웠다. 그러자 시장에선 "최소 2년 이상 집값이 오른다는 '오피셜'"이라는 비아냥만 샀다.

현 정권의 부동산 과열 문제는 노무현 정권과 항상 데자뷔된다. 일부 부동산 투기꾼을 때려잡겠다며 규제의 몽둥이를 마구 휘둘렀다. 그래도 집값은 꿈쩍도 안했다. 오히려 '똘똘한 한 채' 선호만 부추겨 재건축·재개발과 강남 바람만 들쑤셨다. 노 정권 때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딱지(조합원 입주권)를 사려는 아주머니들이 분양사무실 앞에서 며칠씩 지새우기 일쑤였다. 지금은 서울에서 분양만 나왔다 하면 로또 청약경쟁이다. 최근 개포디에이치자이 무순위 청약(줍줍) 5가구에 25만명이 몰렸다.

정부가 아무리 경고해 봤자 부동산 심리는 절대 꺾이지 않는다. 지난 4년간 집 때문에 벼락거지와 벼락부자의 갈림길을 경험한 국민들에게 집값 경고는 어깃장일 뿐이다. 패닉바잉이나 포모증후군이 이렇게 무섭다.
피부에 와닿는 주택공급만이 유일한 백신이다. 3기 신도시나 2·4대책은 최소 3년 뒤에나 약발이 먹힐 대책들이다.
당장 임대차 3법부터 되돌려 전세난부터 안정시키는 게 그나마 즉효약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건설부동산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