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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무늬만 중도보다 원칙이 필요한 대선판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2 18:15

수정 2021.09.03 15:30

[강남시선] 무늬만 중도보다 원칙이 필요한 대선판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유력 주자들은 우리 정치가 벤치마킹할 해외 선진국 모형이나 정책을 내놓곤 한다.

내년 대선판에는 경제학 양대 구루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과 경제사회학자 칼 폴라니가 현대 한국 정치판에 소환됐다. 현재 여야에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밀턴 프리드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칼 폴라니의 후광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의 상징으로 보수 가치의 기저를 이룬다. 반면 폴라니가 주창하는 사회적 경제는 진보의 가치의 기반이 되고 있다.


윤 전 검찰총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부친이 선물한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윤 전 총장의 이념적 사고틀에 프리드먼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재명 지사의 경우 지난 2017년 3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시 정의당 정책자문단장인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과 함께한 자리에서 뼈있는 말을 던졌다. 이 지사는 정 소장에게 "야권 연합정권을 만들어 야권 전체의 정책 총책임을 맡기겠다"고 말했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공약 등 정책 면면에도 칼 폴라니의 그림이 어른거린다. 두 사상가의 생각은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의 선택을 절대적으로 강조한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점에서 철저한 작은 정부론을 표방한다. 폴라니는 사회적경제의 고전으로 꼽히는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한다. 시장경제에서 토지·노동·화폐를 통한 교환관계가 인류의 재앙을 가져왔다며 호혜적 거래와 재분배에 기반한 비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두 사상가의 이론은 현실과 괴리감이 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프리드먼은 지나치게 교과서적이고, 폴라니는 과도하게 이상주의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선명성이 뚜렷한 이들 사상을 표방하는 대선주자는 정치적 공세의 타깃이 된다는 점에서 불리하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의 프리드먼 구애론은 과도한 개인의 선택 지지론으로 낙인 찍혔다. 이 전 지사의 기본소득은 재정현실을 도외시한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난타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슈 선점 면에선 분명 유리하다. 더구나 너나없이 합리적 중도를 표방한다는 후보들이 난립하는 대선판에선 더욱 그렇다. 극단적 도그마에 빠진 정책이야 검증과정을 거쳐가면서 수정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철학 부재 속에 중도를 표방하는 건 정도가 아니다.

흔히 내년 대선 판세를 가르는 바로미터로 표 확장성을 거론한다. 확장성의 전제조건은 자신의 이념적 기초가 얼마나 단단하느냐에 달렸다. 그 지점에서부터 유연성의 힘을 빌려 뻗어나갈 수 있다.
시대의 화두와 이념적 지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자극적인 세부 공약을 앞세워 이미지 정치에 몰두한다. 철학적 무게중심이 없는 정책들은 실행과정에서 '짜깁기'로 전락한다.
그저 누구나 좋은 게 좋은 '무늬만' 중도 표방이 아니라 원칙과 소신을 분명히 밝히는 선명성이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경제부장
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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