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참치떼 찾아나선 바다서 ‘기부’라는 인생목표 낚았습니다 [MZ세대를 만나다]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24 18:42

수정 2021.08.24 22:26

<10·끝> 남태평양 누비는 스물일곱살 ‘일등항해사 유튜버’ 김현무씨

헬기 뜨고, 고기 잡고, 옮겨 싣고…
무한반복되는 배안의 일상이지만
일에 대한 책임감·자부심은 으뜸
365일 선상생활 등 힘들어도
어획량·어종·고깃값 따라
억대 연봉 받는 유망한 직업
후배 길 터주려 시작한 유튜브
수익 일부는 그린피스에 쾌척
기부활동으로 사회 기여하고 싶어
참치 선망선인 사조패밀리아호 일등항해사 김현무씨(27)는 지난 2019년 5월 출항한 이후 27개월째 승선 중이다. 김씨가 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 중인 배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위 사진은 김씨가 직접 찍어 취재진에게 보내준 것이다.
참치 선망선인 사조패밀리아호 일등항해사 김현무씨(27)는 지난 2019년 5월 출항한 이후 27개월째 승선 중이다. 김씨가 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 중인 배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위 사진은 김씨가 직접 찍어 취재진에게 보내준 것이다.

땀 흘리며 노동하는 즐거움을 MZ세대가 알까. 취업이 힘들어도 좀 더 편한 직업, 쉽게 돈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하지 않을까. 여기 육체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야무지게 자신의 인생을 꾸리는 20대가 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처럼 원양어선에 승선한 사조패밀리아호의 일등항해사 김현무씨(27)다. 대학을 졸업한 2017년 여름, 원양어선에 처음 승선한 김현무씨는 지금도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다. 그는 구독자 5만명을 거느린 유튜버이기도 하다. 2019년 12월부터 항해하는 틈틈이 자신의 일터를 찍은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서면으로 만난 그는 "첫 승선 전엔 바다 위 어떤 일상이 펼쳐질지 몰라 두려웠다"며 "종신보험 두 개 들고 탔다"고 말했다. 지금은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있다"고 밝힌 그는 매일 드넓은 대양을 본 영향일까. 꿈이 원대했다. "단기 목표는 선장이 되는 것이고, 장기 목표는 지구에 100만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하하."
유튜버로도 활동하는 김현무 일등항해사가 어창에 가득 쌓인 참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튜버로도 활동하는 김현무 일등항해사가 어창에 가득 쌓인 참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디서 몇 번째 어기(漁期)를 보내고 있나.

▲지금 남태평양에서 4어기를 보내고 있다. 가다랑어(참치) 선망선에서 8명의 한국인을 포함해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총 24명의 선원이 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 나우루, 키리바티, 투발루, 토켈라우, 쿡, 마셜제도, 마이크로네시아 주변을 항해하며 조업하고 있다. 보통 어기를 마치고 귀국해 휴식을 취하지만, 저의 경우는 계약을 연장해 2019년 5월 출항 후 현재까지 27개월째 승선 중이다. 평상시라면 중간중간 섬나라에서 (참치) 하역 후 휴식을 취하는데 코로나19 여파로 하선 자체를 못해 땅을 못 밟은 지 18개월이 지났다. 그 덕분에 마스크는 한 번도 안 썼다(웃음).

―자신의 직업을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보통의 항해사는 특정 물품을 항구에서 항구로 이송하는 역할을 하지만 제가 승선 중인 참치 선망선의 항해사는 조금 다르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참치떼를 찾아 넓은 바다를 항해하며 참치 잡는 일을 한다. 선장이 모든 권한을 갖고 어장이 될 만한 곳을 찾아다니면 항해사들은 레이더를 이용해 새떼를 찾거나 망루에서 망원경을 사용해 어군을 찾고, 헬기를 동원해 본선 주변 30마일까지 어탐을 한다. 고기를 찾은 뒤 조업이 시작되면 항해사도 일반 선원들과 같이 갑판으로 나가 그물을 끌어올리는 양망 작업부터 만선을 할 경우 운반선에 하역하는 전재 작업까지 모두 참여한다. 보통 해가 뜨기 2~3시간 전부터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수평선을 넘어간 뒤에도 일이 계속될 때가 많다.

―유튜브를 통해 '헬기 뜨고, 고기 잡고, 전재하고' 이 작업의 무한 반복이라며 '낭만주의, 고생주의, 늙음주의'를 경고했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이 직업을 갖게 된 계기는.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자연스레 관내 완도수산고등학교(현재 완도마이스터고등학교) 항해학과에 진학하면서 이쪽 분야에 몸담게 됐다. 처음엔 키가 작고 몸도 왜소해 원양어선을 탈 생각은 없었다. 일도 힘들고 막연히 무섭기도 했고. 그래서 대학(국립부경대학교)에선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을 전공했는데, 어선을 타는 선배들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으면서 마음을 바꿨다.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은데, 이쪽 분야는 어떤가.

▲취업률은 100%다. 중도 하선하는 경우가 있어 오히려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해기사 면허를 취득하면 항해사나 기관사가 될 수 있는데, 제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병역특례 목적으로 타는 경우가 많다. 특례가 끝나고 계속 승선하는 사람은 10명 중 2~3명 정도다. 승선 경력을 이용하면 향후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생각보다 많다. 다른 공무원과는 다르게 관공선, 어업관리단, 해양경찰 같은 경우 배를 운항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인데 해당 학과를 나와 해기사 면허를 취득하면 자격요건이 갖춰지기 때문에 공무원 취업률 또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영하 5~10도 어장에서 꽝꽝 언 고기를 깨뜨리거나 옮기면서 3~4일간 하루 12시간씩 일할 때도 있던데. 이렇게 고된 일과 속에서 시간을 쪼개 유튜브를 하게 된 이유는.

▲학교에서 항해장비인 레이더나 어군탐지기의 원리 같은 것은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바다 위 실제 생활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다. 자료도 한정적이고. 그래서 이쪽 분야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 싶었다. 또 내 일상을 유튜브에 올리면 집에서 마음 졸이고 있을 부모님 걱정도 덜어줄 수 있고, 무엇보다 제 지난날들을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 원양어선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일이 힘든 편이나 연봉은 또래에 비해 높은 편인데.

▲첫 어기(1년6개월) 후 1억600만원을 수령했다. 승선 기간 총급여와 퇴직금이 포함된 금액이다. 연봉은 보합제로 어획량에 따른 배당금에 따라 달라진다. 보합률은 선장이 책정하고, 같은 배에 승선한 선원들로 구성된 정산위원과 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된다. 배당금은 해당 어기의 어획량, 어가, 어종, 배의 급수, 선원수, 환율, 유가 등에 따라 다르지만 어획량과 어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첫 어기(삼등항해사) 당시 어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어획량도 그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1억원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직급도 올라 좀 더 많은 금액을 받고 있다. 하지만 365일 바다에 있어야 하는 것치곤 연봉이 높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공간의 제한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을 텐데, 가장 아쉬운 것은.

▲배를 타면서 하는 특별한 경험과 돈을 버는 것 이외에 모든 것에 제약이 있다. 인터넷은 너무 느려서 메신저 외에는 잘 사용하지 못하고, 그 흔한 배달음식 시켜 먹기도 불가능하다. 젊은 날에 연애도 하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지만 아껴두고 있는 중이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 아닌가(웃음).

―직업적 성취감이 높은 순간은.

▲주변의 어선 20~30척보다 먼저 주인 없는 고기를 보고 투망해야 하는 전쟁터 같은 상황에서 우리 배가 300t 정도의 대량 어획에 성공했을 때 성취감이 가장 크다. 그땐 정말 일은 힘들지만 선원들 모두 기분 좋은 하루가 된다. 항해 중 정말 신비로운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점프하는 고래부터 만타가오리가 떼지어 헤엄치는 장관, 새떼가 물속으로 내리닫는 모습까지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만날 때 지구가 정말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은 거북이 폐그물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구해준 적도 있다. 정말 뿌듯했다. 지구와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현재 유튜브 수익의 일부를 그린피스에 기부하고 있는데 앞으로 기부금을 더 늘릴 계획이다.

―종잣돈을 모은 뒤 제2의 출발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김현무씨가 그리는 미래는.

▲제 단기 목표는 선장이 돼 직접 배를 운용하며 넓은 바다를 누비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 목표는 지구에 100만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을 위한 자연생태계를 조성하고, 그곳을 개발 금지구역으로 지키고 싶다. 최근에 생긴 새로운 목표는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전 세계 부호들의 기부클럽)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같은 완도 출신인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의 기부활동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 30여년 뒤 제 나이 60살이 되기 전에 꼭 그 꿈을 이루고 싶다.
혹시 이름을 못 올리더라도 김봉진 의장처럼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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