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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각자도생 위기 몰린 '대출 난민'

[강남시선] 각자도생 위기 몰린 '대출 난민'
역사에 있어 가정은 무의미하다. 지난 일을 돌이켜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가정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정을 하는 일이 있다. 얼마 전 관람한 영화 '모가디슈'가 그랬다.

가정해보자. 때는 1991년. 이역만리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근무 중인 외교관이 있다. 예고 없이 내전이 터졌다. 외부와 통신은 두절됐다. 본국 정부는 스스로 살길을 찾으란다. 공항으로 가도 항공편이 없다. 사면초가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30년 전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영화 속 장면이 2021년 8월 현재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재현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갑자기 미군 철수를 발표한 후 무장단체 탈레반은 순식간에 카불을 장악했다. 현지 사람들은 대비할 시간이 없었다. 육로는 탈레반에 막혔다. 공항도 아수라장이다. 진퇴양난이다. 다시 한번 가정하게 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쩌면 우리나라의 금융 상황도 카불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차주들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초유의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영업자나 취약계층은 은행 대출로 근근이 버텨왔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코로나19가 진정되기도 전에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그 결과 이자부담이 커진 차주들은 '대출난민'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대출총량 억제 압박에 은행들은 줄줄이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다. 주요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올해 1월 연 2.19∼3.74%에서 지난 26일 기준 연 2.28∼4.01%로 상승했다. 은행 주담대의 경우 점점 올라 4%대에 진입했다.

이뿐 아니다. 대출이자 증가의 결정타는 기준금리 인상이다. 지난 26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해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올렸다. 이로 인해 가계의 대출이자 부담이 최대 10조원대로 불어나고, 연체액도 최대 5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런데도 정부는 은행을 통제하면서 차주들에 각자도생을 하라는 모양새다.

또다시 가정하게 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서민에게 있어 대출은 국가가 주지 못하는 '민간 지원금'이자 '생존의 수단'일 수 있다. 폭발하는 수요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대출을 막을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대출규제도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 사전에 대비할 여유도 없이 은행의 대출과 금리 인상이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다. 금융당국과 여당 간 엇박자도 이해할 수 없다.
금융당국은 돈줄 조이기에 나선 반면, 여당은 내년 예산을 600조원대로 잡을 만큼 돈 풀기에 나섰다. 포퓰리즘을 위한 나랏빚은 늘어도 되고, 민생을 위한 가계빚은 늘면 안되는 건가.

문득 영화 '모가디슈'에서 등장인물이 "이제부터 우리의 투쟁 목표는 생존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코로나19 장기화 속 대출은 생존이 목표인 서민들에게 최후의 '구명조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금융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