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본관의 정초석(위)과 일본에서 보관 중인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이 새겨진 '정초' 글씨. (문화재청 제공)© 뉴스1 화폐박물관 머릿돌 앞에 설치된 안내판. (사진=한은) © 뉴스1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이 머릿돌은 일제 침탈의 흔적이지만, 남겨 둠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한국은행은 15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은 본점 화폐박물관 머릿돌(정초석) 앞에 이 같은 문구를 넣은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화폐박물관 건물은 1907년에 착공돼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은행 본점으로 사용됐다. 광복 후 1950년부터 1987년까지는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은이 들어섰다. 1987년 신관이 건립되면서 현재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적 제280호로 지정돼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화폐박물관 모퉁이의 머릿돌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이다.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뜻의 '定礎'(정초)라는 글자가 조선 총독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그러나 이후에도 제대로 된 고증이 이뤄지지 않다가 지난해 정치권의 지적에 문화재청이 자문단을 꾸려 현지조사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문화재청은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먹으로 쓴 '정초' 두 글자의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쓴 획에선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청과 한은은 이 머릿돌을 그대로 두고 이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뒤이어 한은은 안내판을 이날 설치했다. 아픈 과거를 감추기보다는 이를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으로 남긴다는 취지에서다.
이제 화폐박물관으로 가면 건물 한 켠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로 새겨진 우리 역사의 '상처'를 볼 수 있다. 안내판의 문안은 아래와 같다.
"이 머릿돌(정초석)은 일제가 침략을 가속화하던 1909년 7월 11일 설치되었다.
'定礎(정초)'라는 글씨는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쓴 것이다. '隆熙三年七月十一日(융희* 3년 7월 11일)'은 광복 이후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나,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머릿돌은 일제 침탈의 흔적이지만, 남겨 둠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1907년부터 사용된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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