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세치 혀와 막말국감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0.07 17:56

수정 2021.10.07 17:56

[강남시선] 세치 혀와 막말국감
막장, 막말, 막노동, 막가다… 모두 '막'이란 접두어가 붙는다. 사전적 의미는 '거친' '닥치는 대로 하는' '함부로 하다'라는 뜻이다. 웬만한 단어 앞에 '막'이란 접두어가 있으면 뒤에 오는 단어의 수준이나 품격을 낮게 만든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 교수는 지난해 낸 '한국인 이야기'에서 '막'을 마술의 접두어로 표현할 만큼 미스터리하다고 했다. 물론 막국수나 막걸리처럼 대중이 선호하는 단어들도 꽤 있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달 1일부터 문재인정부 마지막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특히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가 세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장동게이트=국힘게이트로, 국민의힘은 대장동 의혹 몸통=이재명 경기지사 프레임으로 맞섰다. 초장부터 고성과 막말이 판을 쳤다. 여야 의원 간 '당신' '눈알' '버르장머리' '정신차려' 등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툭하면 서로를 향해 조롱과 비아냥을 쏟아내는 바람에 상임위가 파행되기 일쑤다.

대선 직전 치러지는 막장국감 행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2016년 국감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으로부터 역대 최악 국감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사상 초유의 국감 보이콧을 하는 등 국감 내내 정쟁의 연속이었다. 이때도 여야는 서로 질세라 막말을 퍼부었다. 이전까지 최악의 국감은 박근혜·문재인 후보 진영이 맞붙은 2012년 국감이었다.

아무리 정당 목표가 권력 쟁취라 해도 품위와 절제가 없다면 국민의 평가는 낙제점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영국 시장조사기업 입소스가 지난 2019년 8월 한국·미국·프랑스 등 세계 23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업 신뢰도 조사 결과 가장 믿을 수 없는 직업 1위로 '정치인'이 꼽혔다. 한국 국민 중 정치인을 신뢰한다는 대답은 8%에 불과했다.

한국 정치에서 다시는 막말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사례는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여야 정당 대변인들이 그만둘 때마다 '그동안 말에 상처를 입은 분들께 사과드린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겠는가.

세치 혀로 흥한 자, 세치 혀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때와 장소를 가려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논어에 "할 만하지 않는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失言)"고 했다. 절제 없이 내뱉는 말이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걸 미리 경계하자는 거다. 영국 작가 조지오웰은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킨다"고 했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서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자) 하면 된다.
정치인의 말은 품격이다. 세치 혀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품격이 없는 막말정치는 참 후진정치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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