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게임

[이도경의 플레e] ‘알릭스VR vs 리니지W’ 국감 뒷이야기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0.09 16:38

수정 2021.10.09 16:38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이도경 보좌관 칼럼
[파이낸셜뉴스] 국정감사는 첫날이 가장 중요하다. 가장 중요하고 덩치가 큰 ‘본부 감사’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고, 의원은 물론이고 보좌진들도 제일 공들여 준비하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첫날 본부 감사 중에서도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은 단연 ‘첫 질의’다. 꼼꼼한 팩트체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주제의 중요도는 물론 시의성이 적절한지, 국민에게 널리 알릴 수 있을지까지 여러 면에서 신중하게 고려하게 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이도경 보좌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이도경 보좌관

우리 의원실은 첫 질의로 확률형 아이템과 ‘Pay to win’ 시스템 일변도인 국내 게임 산업 문제를 지적할 생각이었다.
마침 국정감사 직전 사회적인 문제로 주목받았기 때문에 타이밍도 좋았다. 문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질의하느냐였다.

첫 질의로 주어지는 시간은 7분에 불과하다. 이 중 장관의 답변을 제하고 나면 의원이 실제 질의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든다. 고작 몇 분 동안 확률형 아이템 비즈니스모델(BM)이 무엇이고, 무슨 폐단이 있고, 대안은 무엇인지 모두 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고민 끝에 일반적인 질의 형식을 피하기로 했다. 희대의 명게임으로 꼽히는 '하프라이프: 알릭스'와 국내 게임 출시예정작을 비교해서 보여주며 질의하기로 했다.

알릭스를 비교 대상으로 택한 이유가 있다. 우선 국산 게임과 극명하게 비교가 될만한 예시가 필요했다. 그리고 국정감사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필요성이 있었다. 알릭스는 그것이 가능했다. VR게임인 알릭스는 주변 환경요소를 대부분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상호작용과 물리엔진을 갖추고 있다. 게임 안에서 바닥을 굴러다니는 캔을 던지고, 지우개로 유리창에 쓰인 글씨를 지우고 거기에 펜으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정도다. 이 모습을 국정감사장에서 시연했다. 이를 통해 게임의 수준이 이 정도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을 장관 및 부처 공무원들과 의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다른 이유도 있다. 비교와 지적을 하기에 알맞은 공통점들이 있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개발한 VALVE 게임사와 최근 논란이 된 엔씨소프트 모두 1990년대 중반에 세워졌다. 게다가 양사의 대표작인 하프라이프 시리즈와 리니지 시리즈 모두 1998년 최초로 출시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런데 십수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떤 회사는 가상현실 게임의 수준을 이만큼 올려놨고, 어떤 회사는 이용자들의 과도한 결제를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수준만 높여 놨다. 질의에서도 언급했지만, 특정 BM을 고집하는 동안 국내 매출은 잘 나왔을지 몰라도 세계 시장에서의 고립은 심화되어 왔다.

보다시피 두 게임사는 의원실에서 확률형 아이템 BM 문제를 지적하기에 좋은 비교대상군이었고, 그래서 이들 게임사가 출시 혹은 출시 예정인 게임으로 질의한 것이다.

의원실 질의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관련 글마다 각각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였다. 대부분은 속 시원하게 질의 잘했다는 반응이었지만, 이견들도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의원실의 질의 의도와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드리고자 한다. 애초에 두 게임은 추구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아울러 비즈니스 모델도 게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게임의 기술력이라고도 생각한다. 단순 그래픽 차이가 게임을 평가하는 잣대가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다. 다만, 특정 BM만 과하게 키우면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외면받을 수 있는지를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문제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대상으로 국정감사장에서 할 질의냐는 비판도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국정감사 첫날, 첫 질의로 선정할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과도한 사행성을 유발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많은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이를 지적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국민에게 해가 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VR 시연까지 하며 질의를 했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1,2년 사이의 일이 아니다. 10여 년 가까이 된 오랜 문제다. 이용자들의 비판이 커지자 국내게임업계는 2015년 자율규제안을 내놓았지만, 면피용에 불과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개선은커녕, 급기야 이용자들이 집단 움직임과 단체 시위를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 문제를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게임업계가 주장해 온 자율규제론에만 의지해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체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적 환기가 당연히 필요한 자리이고, 국감이야말로 그 문제를 다루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특히, 문체부는 건강한 게임문화를 조성할 책임이 있는 주무부처이기 때문에 더더욱 국정감사에서 질의해야만 했다.

언뜻 보기엔 단순 퍼포먼스 질의가 아닌가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질의에서 볼 수 있듯이, 알고 보면 깊은 고민과 논의 끝에 나온 결과물인 경우들도 많다. 이 점을 참고해서 남은 국정감사를 보신다면 또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게임과 이스포츠 관련해서는 14일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물관리위원회, 21일 문화체육관광부 종합감사가 남아있다. 남은 국정감사 일정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게이머의 많은 관심은 분명 좋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정리/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