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난 밀양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나타났던 사회적 갈등은 과거와 같이 지방에 대규모 발전소를 건설하고 이들 발전소로부터 전력수요가 높은 도시, 특히 수도권 지역까지 송전하는 방식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기존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부도 수요지 인근의 분산전원 확대와 같은 정책방향을 제시했으나, 현재 도심지 분산전원 확대에서 최대의 걸림돌은 유휴부지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정부 부처 및 에너지 기업들에서 논의되고 있는 '에너지 슈퍼스테이션' 모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국 주유소 네트워크를 기존 화석원료 최종공급지에서 친환경에너지의 생산, 유통, 공급의 허브로 전환하는 것으로, 주유소 혹은 인근에 태양광 및 연료전지 등 분산전원을 설치해 전기차 충전에 필요한 전력 일부를 자체 공급하는 새로운 분산형 에너지 플랫폼이다. 이러한 새로운 분산형 전원 플랫폼은 우리 경제에서 수소의 역할과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수소는 기존 에너지원 대비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며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으나 생산, 수송, 유통 등의 가치사슬 전 분야에서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현재 수소 생산 과정이 정말로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안전에 대한 확인, 전력망과의 연계 등 다각도의 논의와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존 에너지 네트워크의 소규모 부지들을 활용한 수소 연료전지 발전은 화석연료 기반의 현재 에너지시스템을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면서, 우리 경제에서 수소의 역할과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분산형 전원 플랫폼의 구축 및 운영을 위해선 관련 제도 및 규제 개선, 기술 혁신(그린 수소) 등과 같은 많은 노력 역시 필요하다. 특히 주유소 내 연료전지 발전시설 설치 및 판매를 위해서는 현재의 '위험물안전관리법 시행규칙'의 개정, VPP 및 전력시장제도 및 관련 규제 개선, 분산전원의 가치를 반영한 보상체계 수립 등이 필요하다. 도심지 소규모 친환경발전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송배전망 추가설치 및 송배전 손실비용, 친환경에너지 전환에 따른 환경개선 효과 등을 분산편익으로 산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인센티브 제공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전체 에너지시스템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에너지시스템의 친환경적 변화와 진화가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첫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조영상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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