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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선진국 가는 길, 정치가 장애물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0.25 18:00

수정 2021.10.25 18:53

[구본영 칼럼] 선진국 가는 길, 정치가 장애물
토종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취가 놀랍다. 이미 넷플릭스 스트리밍이 서비스되는 83개 국가 중 76개 국가에서 'TV 프로그램' 부문 1위를 기록했다. 구슬치기와 줄다리기 등 한국적인 골목 놀이를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의 소재로 활용한 아이디어도 참신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적 보편성을 얻었으니 말이다.

예술성을 떠나 한류가 지구촌을 휩쓴 지 오래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상 여러 부문을 석권했다.
올해 BTS의 노래도 팝의 본고장 미국의 빌보드 차트 최상단에 수시로 올랐다. 이제 '오징어 게임'을 세계에서 1억4200여만명(22일 현재)이 봤다니, 한국이 적어도 문화산업에선 선진권에 들었다고 해도 망발은 아닐 듯싶다.

이번에 K드라마가 대박을 터뜨리기 전에 선진국임을 자축하는 팡파르가 울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개발도상국 중 최초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격상했다"고 자랑하면서다. 물론 UNCTAD가 지난 7월 한국의 지위를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바꾼 건 맞다.

하지만 잘 보이고 싶은 참모들이 써준 대로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선·후진국을 UNCTAD 잣대로 가리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국은 지난 2010년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기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개발원조위(DAC) 멤버가 됐다.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발돋움했음에도 지난 정부들이 왜 UNCTAD의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려고 한사코 버텼겠나. 무역협상에서 농산물 등 일부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사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국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선진국이었다. 전후 이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뿐이라는 게 일반론이다. 2020년 경제 규모가 OECD 회원국과 주요 신흥국 38개국 중 10위이니, 한국도 이 대열에 들어선 셈이다. 물론 덩치에 비해 신체충실지수가 부실한 게 흠이다. 같은 해 OECD가 집계한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에선 36개국 중 28위에 그쳤다.

1995년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중국에서 설화를 빚었다. 베이징 특파원들에게 "한국은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입바른 소리를 한 탓이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투자로 일본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여세를 몰아 주요 20개국(G20)이 됐으니, 경제에선 1류가 된 셈이다.

그러나 모든 부문에서 선진국이 됐는지는 의문이다. '대장동 게이트' 공방을 벌이느라 '선진 한국' 청사진 제시는 뒷전인 대선판을 보라.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로 "감옥 갈 사람"이라고 으르렁거리고 있을 뿐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쥐꼬리만큼 투자한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4인방이 어떻게 8000억원 넘는 '돈벼락'을 맞았는지, 그리고 이런 황당한 사업설계를 한 '그분'이 누구인지도….

어느 선진국인들 갈등과 부조리가 없겠나. 다만 '떼법'이 아닌 합법으로 푸는 시스템이 결국 작동하기에 선진국이다. 반면 우리는 정치권도 검·경도 '대장동 도둑정치(kleptocracy)'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러니 "국운이 여기까지인가"하는 한탄이 절로 나올 법하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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