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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현대판 해금령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1.18 18:00

수정 2021.11.18 18:00

[강남시선] 현대판 해금령
14세기 중국의 해금(海禁)정책은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패권을 가른 분수령이다. 1371년 명나라의 태조 홍무제 주원장이 "한 조각의 판자도 바다에 떨어뜨리는 것을 불허한다"는 고강도 '해금령'을 시행하면서 동아시아의 해상 무역과 교통이 일제히 얼어붙었다. 이는 수세기 동안 지속돼 결과적으로 중국의 조선술과 항해술 등 선박기술을 퇴보시킨 자충수였다. 조선시대에 중국, 일본을 제외하곤 항해 기록이 사실상 전무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당시 동양에 비해 발달이 더뎠던 유럽 국가들은 15세기 이후 대항해시대로 황금기를 누렸다. 중국이 세계문명을 이끈 4대 발명품(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을 확보하고도 근대사에 열강들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도화선이 해금령이다.
중국 역사에 천추의 한이 될 법한 최대 패착이다.

작금의 요소수 사태는 그때와 닮아 있다. 명나라의 동아시아 해상무역 금지 명분은 왜구침입 차단이었다. 현재 중국이 발동한 요소수 수출금지의 시발점은 미국과의 갈등이다. 범위와 대상만 바뀌었을 뿐 현대판 해금령이나 다름없다.

세계패권을 움켜쥐기 위한 미중 무역분쟁에서 미국이 호주를 끌어들인 게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중국은 호주산 석탄수입 중단으로 보복에 나섰고, 사상 초유의 요소수 수출금지로 이어졌다. 표면적으론 내수물량 부족을 우려한 조치이지만, 중국 내 비축물량 등을 감안하면 과한 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향후 중국의 공급제한이 요소수 하나에 그칠지 의문이다. 중국 수입의존도가 80%를 넘는 품목만 해도 마그네슘잉곳(100%) 등 1850개에 달한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이 2019년 기준으로 집계한 대중국 수입의존 상위품목에는 기지국용 송수신기(95.9%), 점화용와이어링 세트(86.7%) 등도 있다. 이미 와이어링은 국내 자동차업계에 한 차례 타격을 입혔다. 중국산 기지국용 송수신기 역시 수급에 차질을 빚으면 통신대란을 야기할 수 있는 품목이다. 미중 패권싸움이 종식되지 않는 한 중국은 글로벌 공급사슬 우위를 내세워 직간접적으로 주변국 길들이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마뜩지 않지만 국내 요소수 사태와 관련해 중국을 인정하라는 현지 언론들의 논조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이든 의존도가 높으면 치명타로 이어질 수 있다. 급소를 찔린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금지와 중국발 요소수 대란이 그렇다. 당장 국제무역보복 및 불확실한 국제정세에 대비한 요소수 생산확대와 수급다변화 방안 마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원자재 전반의 수입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고민뿐 아니라 국내 공급망에 대한 위기관리체계도 재정비해야 한다. 강대국들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언제든지 국내 산업은 허점을 파고든 외통수에 걸려들 수 있다.
눈 뜨고 당하느냐 두 수, 세 수를 미리 내다보고 대비하느냐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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