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보이지 않는다고 외면해버린 '외톨이', 정부도 국회도 20년간 손놓았다[숨어버린 사람들 (6) 정책서도 소외되는 '은둔형 외톨이']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1.23 17:24

수정 2021.11.25 11:00

'은둔형 외톨이' 용어 20년 지났지만 관련 조례는 2019년 광주서 첫 통과
이후 부산·서울 등 일부 지자체 동참
이제는 정부·국회가 답해야할 때
임시 처방으론 문제 해결 어려워
개념·실태조사부터 지원까지 길게 봐야
지난 10월 20일 서울 종로구 인근 한 미술관에서 열린 '무서운 빛, 따스한 어둠' 전시회 사진=서동일 기자
지난 10월 20일 서울 종로구 인근 한 미술관에서 열린 '무서운 빛, 따스한 어둠' 전시회 사진=서동일 기자


"제 은둔 시절 외부와 접촉할 수 있던 유일한 수단은 편의점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프라인으로 아무리 병원이 많고 상담센터가 많아도 유효하지 못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센터와 병원까지 연계된 중간다리 역할이 필요합니다."

지난 8월 서울시의회가 주최한 '서울형 은둔형 외톨이 지원의 길을 찾다' 토론회에서 유승규 K2인터내셔널 코리아 은둔고수 프로젝트 매니저는 이같이 말했다.

유 매니저는 "은둔형 외톨이는 문제를 털어놀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며 "안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이를 충족할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숨어들어 간 사람들이 세상에 '은둔형 외톨이'로 규정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광주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개별적인 조례만 존재할 뿐이다.
정부에서는 일부 부적응 청소년을 대상으로 유사한 정책을 집행했지만 여전히 '개념적 미비'를 이유로 은둔형 외톨이 정책 입안에 손을 놓고 있다. 현장의 전문가들은 다른 소외계층과 달리 정책적인 성과를 지표화하기 어려워 은둔형 외톨이들이 계속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에서 부산, 서울까지 동참…국회가 답할 때

23일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라는 단어가 세상 밖에 나오게 된 시기는 2002년 연구소의 한 논문에서 시작됐다. 해당 논문에서는 핵가족화와 인터넷 보급 확산 등 사회구조의 변화로 기본적인 사회활동조차 거부한 사람들을 은둔형 외톨이라 규정했다.

2000년대를 경유하며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사회 현상으로 격상했지만, 관련 조례는 2019년이 돼서야 통과됐다. 광주시는 지난 2019년 10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통과시켰다. 해당 조례도 지역사회의 헌신적인 상담가와 시의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오상빈 광주광역시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지난 2007년부터 100회 이상 은둔형 외톨이 가정방문 상담을 진행했다. 그는 지난 2018년 광주시 의원이던 신수정 의원을 찾아가 은둔형 외톨이 논문과 자료 등을 전달하며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이후 광주시는 지난 2020년 행정안전부로부터 지난해 전국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신 의원은 "오상빈 센터장이 2018년 찾아와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며 "이후 관심 있는 니트 청년, 공무원, 전문가들과 만나 조례 초안을 수차례에 걸쳐 수정하고 완성했다"고 말했다.

이후 광주시는 폴인사이트와 함께 실태조사에 나서 349명의 은둔형 외톨이를 찾아냈다.

이후 광주시는 은둔형 외톨이 사전 욕구조사, 부모 자조 모임, 방문 상담 및 개별 지원 프로그램, 공공·유관기관 및 지역 네트워크 활용 등을 통한 협력체계 구축 등의 사업을 펼쳐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올해 은둔형 외톨이 5개년(2022~2026) 기본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내년부터 지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광주시를 시작으로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련 조례를 제정하거나 발의한 상태다. 부산시는 지난 6월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매년 지원 계획 수립, 현황 및 실태 조사, 예방 사업 및 지원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고용 및 직업 훈련 지원, 전문인력 양성 등이 담겼다. 부산시에 따르면 해당 조례로 인해 은둔형 외톨이가 기존의 복지서비스 대상이 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서울시에서도 2020년 10월 16일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 해당 조례안은 광주시와 달리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의 질 향상도 명시돼 은둔형 외톨이가 단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 지원책 미미…입법 통해 장기간 조사해야

지자체에서는 조례를 발의하는 등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국회에서 여전히 적극적인 정책 입안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18년 권미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차원에서 은둔형 외톨이 지원을 위한 '청소년복지 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2019년 10월에는 윤일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와 복지서비스 지원을 규정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국회 회기 종료로 모두 폐기된 상태다.

정부 상황은 이와 마찬가지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 2006년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은둔형 부적응 청소년 지원사업'을 구상하고 실태조사와 함께 지원정책을 검토했다. 그러나 대상자 발굴이 어렵다는 이유로 실태 파악을 중단했다. 현재는 지역사회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외톨이들을 지원해줄 뿐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나 정의가 없는 상황"이라며 "은둔형 외톨이를 독립된 질병으로 분류할 것인지 다른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볼 것인지 개인의 질병이 아닌 사회현상으로 볼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행정안전부에서는 기존 복지서비스 테두리인 읍면동 중심의 관리 체계 안에 은둔형 외톨이를 연계해서 접근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조례뿐만 아닌 국회(국가) 차원에서의 입법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철경 G'L학교밖청소년연구소장은 "정부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를 니트족의 일부로 바라볼 뿐 그들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실제로 은둔형 외톨이는 발굴조차 어려워 정책이 원래 목적대로 수행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정책담당자 입장에서는 외톨이 발굴이 어렵고 사업성과를 입증하기도 어려워 관련 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상빈 광주광역시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는 모든 세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외부에 드러나지 않아서 일반 국민이나 정책적으로 관심도가 낮다"면서도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단기간, 단편적인 서비스 제공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입법으로 재정적 지원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김도우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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