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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세계시장은 냉혹한데 반도체특별법은 잠자는 중

[fn사설] 세계시장은 냉혹한데 반도체특별법은 잠자는 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 일정을 마치고 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미국에서 삼성전자의 두번째 반도체 현지 공장 설립을 확정짓고 24일 귀국한 이재용 부회장의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니 마음이 무겁다"는 언급은 의외였다. 삼성전자의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 제2의 반도체 공장 건립 결정은 탁월한 전략적 선택이다. 미국과 중국간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공급망 동맹에 올라탄 것으로 분석된다. D램에 이어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노려볼 만한 공격적 투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부회장은 파운드리 세계 1위 전략 등 희망적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언급은 차치하더라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전쟁 중이다. 국가와 기업이 모두 참전했다. 미국의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진두지휘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을 불러모아 공급망 관련 회의를 주재한 게 시작이다. 최근엔 미 행정부까지 나서 삼성전자를 포함한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에 영업기밀 제출까지 요구했다. 미 의회는 520억달러(약 61조원) 규모의 자금 지원 내용을 담은 반도체 생산 촉진법을 추진 중이다.

대만과 일본 등의 움직임도 발빠르다. 파운드리 시장 1위인 대만 TSMC는 향후 3년간 반도체 공장 신설에 10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한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 지원 목적으로 최소 5000억엔(약 5조16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다. 기금의 첫 지원 대상은 TSMC의 일본 구마모토현 공장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굴기를 선언하고 반도체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지난 10월 국회 통과까지를 단언했던 '국가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반도체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기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내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현재로선 미지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최근까지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R&D) 비용과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강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대기업 지원편중 등의 이견으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미국은 반도체 설비투자의 최대 40%까지 세액을 공제한다. 삼성전자 테일러시 공장엔 세액공제로 1조2000억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계류 중인 반도체특별법은 원래 30% 공제를 추진했지만 최종적으로 10%선으로 정리했다. 이마저도 올해 안에 법안 통과가 불투명하다.

반도체 패권경쟁에선 한번 뒤쳐지면 낭떠러지다. 삼성전자가 D램 최강자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초격차 기술력과 압도적 투자 결과다. 더구나 지금의 반도체 패권경쟁은 기업만의 전쟁이 아니다. 미국, 일본, 대만 모두 정부와 입법부까지 한몸이다. 이 부회장이 미국 방문 중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라고 말하며 느꼈을 위기감이 이해가 된다.
경제와 안보가 동시에 가는 시대의 국가생존문제이기도 하다. 반도체 산업 지원을 특혜로 보는 관점은 시대착오적이다. 반도체특별법을 세계적 추세에 맞게 보완하고 한시 바삐 입법화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