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尹 약자와 동행, 진심이길 바랍니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13 18:00

수정 2021.12.13 18:00

[곽인찬 칼럼] 尹 약자와 동행, 진심이길 바랍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하하하 웃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12월 7일)에서다. 진행자가 "윤석열 후보는 선대위 출범하면서 약자와의 동행을 제1호 공약으로 내세웠는데요"라고 하자 터져나온 웃음이다. 심 후보는 "그분은 주52시간제도 폐지하고 최저시급제도 폐지하자는 분 아니에요?"라고 반문했다. 사실 여태껏 국민의힘 윤 후보가 보여준 행보는 약자와의 동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나는 윤 후보에게 기대를 건다.
평생 검사만 했으니 정치적으로는 새 도화지나 마찬가지다. 그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본인 하기에 달렸다. 나는 윤 후보가 따듯한 보수라는 걸작을 남기기를 바란다.

따듯한 보수? 유승민 전 의원(국힘)이 즐겨 쓰던 말이다. 유 전 의원은 지난 8월 대선 출사표에서도 "성장의 열매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했다. 나는 윤 후보가 로열티를 주고라도 따듯한 보수 지식재산권을 유 전 의원한테 빌려오길 바란다.

왜 따듯한 보수인가. 짧게는 대권을 겨냥한 선거전략이다. 내년 대선이 중도층 확보 싸움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윤 후보가 외연을 넓히려면 강경 보수 정책만으론 한계가 있다. 합리적인 중산층, 노동자, 여성, 소수자에게 어필할 공약이 필요하다. 길게 보면 따듯한 보수는 국힘이 장수 정당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보수(保守)는 보수(補修)다. 끊임없이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이 고개를 끄덕인다.

19세기 프러시아의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재임 1871~1890년)에겐 철혈재상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의회 연설에서 "독일이 당면한 문제는 쇠와 피에 의해서만 해결된다"고 역설했다. 국가주의의 화신, 슈퍼 울트라 보수라 할 만하다. 그러나 비스마르크 시절에 프러시아는 세계가 놀랄 만한 사회안전망을 속속 도입했다. 건강보험(1883년), 국민연금(1889년), 노동자보호법(1891년) 등이 대표적이다. 비스마르크의 따듯한 보수 전략은 다목적 카드였다. 그중에서도 독일 사회민주당의 득세를 견제하려는 목적이 컸다.

영국 보수당은 200년 장수 정당이다. 19세기 후반기 보수당 정부를 이끈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는 그 초석을 놓은 이로 꼽힌다. 그는 '하나의 국민(One Nation) 보수주의'를 제창했다. "보수당은 엘리트나 어느 특정계급의 정당이 아니라 전 국민의 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서울대 박지향 교수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

어떻게 하면 둘로 쪼개진 영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디즈레일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답을 찾았다. "디즈레일리 정부는 공중위생법, 슬럼 문제를 해결할 노동자 거주법, 피케팅을 허용한 노동조합법, 10세 이하 어린이의 고용을 금지한 공장법 등을 통해 (개혁적인) 자유당 정부가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정도의 사회개혁을 추진했다."

약자와의 동행은 김종인 국힘 총괄선대위원장의 아이디어다.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줄지 말지는 윤 후보에게 달렸다. 단순히 힘을 싣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아예 약자와의 동행을 윤석열표 대표공약으로 체화(體化)하기 바란다.
한국에서도 따듯한 보수가 나올 때가 됐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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