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2022대선지식창고] 이 조합 못 잃어!

조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21 14:38

수정 2021.12.22 18:41

역대 대통령이 만난 사람들은 누구?
'환상케미' 돋보이는 조합을 찾아라!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혼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둘이 있을 때 '환상케미' 돋보이는 짝꿍이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에게도 찰떡으로 어울리는 짝꿍이 있었을까요?
케미 : 사람 사이의 조화나 호흡을 뜻하는 신조어. 케미스트리(Chemistry,화학 반응)에서 유래.

케미가 좋은 조합을 ‘꿀케미’ ‘환상케미’ ‘케미갑’이라고 표현한다.

1. 김대중 대통령 X 넬슨 만델라 대통령
-무려 노벨 평화상 조합!

ⓒ대통령 기록관, 2001, 공공누리 제 3유형 개방, '인종차별을 종식시킨 검은 대륙의 별, '넬슨 만델라(Nelson R. Mandela)''
ⓒ대통령 기록관, 2001, 공공누리 제 3유형 개방, '인종차별을 종식시킨 검은 대륙의 별, '넬슨 만델라(Nelson R. Mandela)''
용서하게 되면 인생의 전투에서는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깁니다.

-<김대중 옥중서신> 中

1998년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은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마을 운동을 장려하고, 중국·일본과도 활발하게 외교 활동을 벌였습니다. 남북한의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펼쳤던 햇볕정책은 그를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자로 만들었죠.

한편 19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인권 운동가였습니다. 흑인 차별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격리 정책을 포함한 인종 차별 정책)를 없애고 350여 년에 걸친 인종 간의 싸움을 끝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죠. 그 역시 1993년 공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두 대통령은 세계 평화에 대한 뜻이 비슷해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우리나라에 1995년과 2001년 총 두 번 방문했는데요. 첫 방한 때 서울대학교에서 명예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두 번째 방한 때 김대중 대통령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김대중이 1997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에는 27년 교도소 수감 생활 동안 착용했던 낡은 시계를 선물했습니다. 김대중은 답례로 20년간 정치 활동을 하면서 쓴 낡은 가방을 선물했죠. 넬슨 만델라가 쓴 책을 직접 번역해 한국에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2. 이승만 대통령 X 美 공군 딘 헤스 대령
-전쟁고아의 아버지와 그를 아낀 대통령

ⓒ대통령 기록관, 1951, 공공누리 제 3유형 개방, '한국공군의 아버지와 천 명의 아이들 '딘 헤스(Dean E. Hess)''
ⓒ대통령 기록관, 1951, 공공누리 제 3유형 개방, '한국공군의 아버지와 천 명의 아이들 '딘 헤스(Dean E. Hess)''
”I fly by faith.”
- 딘 헤스 대령 좌우명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 공군은 우리나라에 전투기 훈련과 전투기 조종사 양성을 위해 바우트 원(BOUT-1) 부대를 창설했습니다.

딘 헤스 대령은 미 공군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를 위해 싸울 뿐 아니라 전쟁고아를 구하는 데 누구보다 진심인 인물이었습니다. 1951년 '1·4후퇴' 당시 중화인민지원군이 남쪽으로 내려오자, 미 공군 목사이던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과 함께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서울에서 제주도로 수송했죠. 당시 그는 공군의 지휘부를 적극 설득해 무려 15대의 C-54 수송기를 동원했습니다.

휴전 선언 후 이승만 대통령은 딘 헤스 대령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며 고마운 마음을 표했고, 미국으로 돌아간 딘 헤스 대령은 한국전쟁의 경험을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이후 그의 이야기가 더글라스 서크 감독에 의해 영화 <전송가>로 제작되면서 1956년에 다시 한 번 방한, 이승만 대통령과 조우하기도 했죠. 그는 책과 영화로 받은 수익금 전부를 한국 보육원에 보냈고,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3. 김영삼 대통령 X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
-님도 보고 문화유산도 돌려 받고!

ⓒ대통령 기록관, 1993, 공공누리 제 3유형 개방,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프랑수와 미테랑 (Francois Maurice Adrien Marie Mitterrand)'
ⓒ대통령 기록관, 1993, 공공누리 제 3유형 개방,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프랑수와 미테랑 (Francois Maurice Adrien Marie Mitterrand)'
문화는 곧 생활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문화적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조선 왕실의 행사와 구조를 자세히 기록한 외규장각 의궤는 슬픈 사연이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188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가져가면서 프랑스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죠. 국민들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 우리 땅으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9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 날, 김영삼 대통령이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달라고 요청했는데요. 과거 그리스 문화유산 반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할 만큼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미테랑 대통령이 한국에게만은 특별히, 흔쾌히 문화유산을 반환할 의사가 있다고 답변한 것이죠!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외규장각 문서 중 하나인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鑑儀軌)」 상권'이 우리나라로 돌아 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미테랑 대통령의 결정에 크게 감동했고, 1995년 유럽 순방 당시 첫 순방국으로 프랑스를 방문했습니다.
미테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 및 양국 간 우호 협력 확대 방안을 협의하며 양국의 관계를 공고히 다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 사서들의 반대로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외규장각 의궤는 1993년부터 2011년까지 총 18년에 걸쳐 전권을 일괄대여 방식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박한 찰떡궁합을 기다려요
-이색케미를 선보일 다음 '인싸' 대통령은 누구?

활발한 외교는 물론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눈부신 케미 자랑하며 국익과 국격을 올린 대통령의 이야기, 어땠나요?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사람과 케미를 발산하게 될 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 '꿀케미'가 보고 싶다면 소중한 표로 후보자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cyj7110@fnnews.com 조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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