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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연금퍼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1.16 18:23

수정 2022.01.16 18:23

[fn광장] 연금퍼즐
평균수명이 빠르게 연장되면서 연금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공적연금 및 사적연금의 적립금 규모는 2015년 930조7000억원이었으나 2020년에는 1454조1000억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법정 퇴직연금은 동 기간 연평균 15.1% 증가해 2020년에는 255조5000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퇴직급여를 받을 때 연금 선택비율이 건수로 3.3%, 금액으로 28.4%에 불과해 퇴직연금이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

프랑코 모딜리아니는 198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연설에서 합리적 선택이론에 따르면 연금이 장수위험에 대응하는 매력적 수단으로 예측되지만 은퇴자 중 자산의 상당부분을 연금화하는 사람이 적은 현상을 나타내는 연금 퍼즐(annuitization puzzle)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나라에서 퇴직연금 수령 시 일시금 선택 비율이 높은 현재 상황을 모딜리아니의 연금 퍼즐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연금을 선택하지 않는 첫 번째 원인은 퇴직 시점의 목돈의 필요성이다.
주택융자금 상환, 자녀의 교육 및 결혼 비용, 의료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해 일시금이 필요하다. 둘째, 유산 상속을 위한 것이다. 본인의 안정적 노후보다는 자녀의 생활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을 중시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자산을 현금으로 유동화하는 주택연금과 농지연금이 활성화되지 않는 원인이 되고 있다. 셋째, 생명표상으로 평균수명이 날로 연장되는 것을 보면서도 정작 본인은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연금 선택을 꺼리게 한다. 넷째, 이자율 인플레이션 등 연금의 실질 가치를 변동시킬 수 있는 경제적 환경 변화가 발생할 때 연금 선택은 대응방법을 제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연금 선택의 메리트 부족이다. 미래 연금의 현가액은 퇴직일시금과 실질 가치상 동일하고, 여기에 금융기관 사업비를 감안하면 연금이 유리하지 않게 생각될 수 있다. 여섯째, 잦은 이직으로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미리 받게 되어 장기근속자 일부를 제외하면 은퇴 시 연금으로 나누어 받기에 너무 과소해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다.

각자도생의 입장에서 볼 때 연금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연금제도의 본질은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는 장수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짧게 사는 사람과 오래 사는 사람의 공생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연금제도가 없으면 예상보다 오래 사는 사람은 노후 빈곤에 빠지게 되고, 예상보다 짧게 사는 사람은 쓸 수 있는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사망한다. 은퇴 시점에 개인은 각자도생의 관점에서 일시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공적연금은 의무적으로 연금만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연금에 대한 인식이 낮은 시기에는 이런 연금 의무 수급의 부정적 인식을 줄이기 위해 부담하는 것보다 받는 것을 후하게 설계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기관에서 운영하는 퇴직연금은 부담한 돈의 원리금 합계만큼을 확률적 평균수명에 기초해 연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연금지급 의무화를 설득하기 쉽지 않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은 빠르게 길어지고 있어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연금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아직은 근시안적 시각에서 일시금을 선택하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연금 선택을 꺼리는 행동 유인을 상쇄하기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에 대한 세금감면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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