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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정치가와 정치꾼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03 18:34

수정 2022.03.03 18:34

[강남시선] 정치가와 정치꾼
급하긴 급했나 보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표피적인 여론조사의 흐름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전 시작일인 3일 새벽 윤철수(윤석열·안철수 단일화) 퍼즐이 전격 성사됐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안될 것 같던 두 사람의 단일화였다. 이쯤 되면 루비콘강을 거스르는 게 정치의 묘미인가 싶다.

솔직히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의 단일화 선언이 자극제였다.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1등이 독식하는 게 대한민국 대통령선거다. 2등은 필요없다.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고서라도 단일화를 해야 그나마 좀 챙길 수 있는 전리품이라도 있다. 정치공학적 측면에선 단일화는 1+1=시너지를 담보하지 못한다.

그래도 하는 건 단일화 전 각자 지지율이 단일화 후 단순 합산될 거라는 착시 때문이다. 서로 죽어라 물고 헐뜯다가도 '일단 이기고 보자'며 점잔 빼고 하는 게 단일화 방정식이다. 어쨌든 양강구도인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각자 우군을 얻었다. 뭘 주기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운명의 1주일을 앞두고 양강구도는 더 명확해졌다.

이렇게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통령 자리가 갖는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대통령 특권은 10가지에 달한다. 우선 영수증 없이 특수활동비를 쓰는 것에서부터 월 1000만원이 넘은 대통령연금은 전액 비과세라고 한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국민세금으로 격려금과 선물을 무제한으로 줄 수 있다. 공무원 중 유일하게 배우자 옷을 세금으로 구입할 수 있고, 다른 정부부처와 달리 업무추진비를 비공개로 사용 가능하다. 한마디로 내 주머니에만 넣지 않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수만개에 달하는 정무직 인사권은 권한 중 백미다.이참에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이 특권부터 내려놓자고 선언하면 어떨까. 거창한 정책도, 비전도, 리더십도 좋지만 필자는 이 무한리필되는 대통령 특권부터 내려놓자고 공동서약할 것을 대선주자들에게 제안한다.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다. 두 후보 모두 다양한 의혹에다 배우자 리스크까지 있다. 네거티브 하지 말자고 하던 후보도 안되겠다 싶던지 이젠 대놓고 네거티브를 한다. 2등이 필요없는 선거려니 이해는 된다. 차선보다는 차악 후보를 뽑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이 와중에 대통령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다면 선거에 관심 없는 부동층 표심이 좀 흔들리지 않을까. 더 욕심내자면 아예 '네거티브 방지법'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제정해 모든 선거에 적용하면 좋겠다.
그러면 최소한 다음 선거에선 법이 무서워라도 정책대결에 집중하지 않을까.

개혁가로 존경받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총리는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얘기하지만,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얘기한다"고 했다. 그가 표만 생각했다면 민감성 의제인 노동개혁을 밀어붙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는 9일 정치꾼이 아닌, 정치가가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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