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에너지 대통령’이 필요하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09 20:22

수정 2022.03.09 20:22

[곽인찬 칼럼] ‘에너지 대통령’이 필요하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했다. 가장 센 제재 카드를 꺼냈다. 파장은 예측불허다. 러시아는 미국·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이다. 제3차 오일쇼크가 임박했다는 불길한 예언이 나오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파헤치면 에너지가 있다.
신냉전도 에너지라는 프리즘을 거치면 또렷한 그림이 잡힌다.

먼저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형제처럼 다정하다. 둘 다 미국한테 부대낀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직은 혼자 미국을 감당하기엔 벅차다. 그래서 자주 둘이 어울린다.

중·러 밀월을 설명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에너지다. 러시아는 석유·천연가스 강국이다. 러시아 국가 예산의 40~50%가 석유·가스 수출에서 나온다니 말 다했다. 니켈, 알루미늄, 팔라듐 같은 귀한 원자재도 러시아 땅에 대량으로 묻혀 있다.

중국도 희토류 등 자원부국이지만 석유·가스가 넉넉한 건 아니다. 그래서 '두 개의 자원' 전략을 쓴다. 먼저 밖에서 확보한 자원부터 소비한다. 자기 땅에 묻힌 자원은 비상용으로 아껴둔다. 중국은 원자재가 필요하고, 러시아는 원자재를 팔 시장이 필요하다. 러시아 석유 수출량의 30%가량이 중국으로 간다. 에너지 전문가인 대니얼 예긴은 '뉴맵'에서 "한때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주의 이념으로 뭉쳤던 두 나라는 이제 석유와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다시 하나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국은 셰일혁명 덕에 세계 1위 원유·천연가스 생산국으로 올라섰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해도 타격이 없다. 오히려 미국은 국내에서 쓰고 남는 에너지를 수출한다. 서유럽은 이런 미국이 불편하다. 독일 등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가스 제재에 선뜻 동참하지 않은 이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도 뿌리는 에너지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고 3년 뒤 우크라이나는 자국에 배치된 핵무기를 전량 러시아에 반환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거쳐서 서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에 대한 통제권은 놓지 않았다. 이후 두 나라는 걸핏하면 다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가스값을 제대로 안 낸다고 불평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가스관 통행료(관세)를 제대로 안 낸다고 맞섰다. 화가 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내용 가스 공급을 중단한 적이 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는 서유럽행 가스관에서 몰래 가스를 빼 쓰기도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가장 큰 이유는 나토 동진을 막는 데 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엔 가스분쟁으로 쌓인 분노가 있다.

한국은 에너지 자립도가 세계 꼴찌 수준이다. 예긴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5위 석유 수입국, 세계 3위 LNG(액화천연가스) 수입국, 세계 4위 석탄 수입국"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자원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릴 조짐을 보인다. 안정적인 자원 확보는 한국 경제의 명운이 걸린 중대사다. 러시아는 제재에 동참한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분류했다. 당장 니켈 등 핵심 자원을 무기로 한국에 보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 세계 니켈의 10%가량이 러시아에서 나온다. 니켈이 없으면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지 못한다.
새 대통령은 '에너지 대통령'이 돼야 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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