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혐오라는 불량식품의 확산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03 19:15

수정 2022.04.03 19:29


[강남시선] 혐오라는 불량식품의 확산


'혐오(嫌惡).' 표준국어대사전은 그 뜻을 '싫어하고 미워함'이라고 적고 있다. 지금은 모두가 미워하고, 모두가 미움을 받는 혐오의 시대다. 과거에는 정치권에서 지역감정을 악용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남자와 여자, 젊은층과 노인층이 서로 할퀴고 싸운다. '한남충' '맘충' '틀딱충' 등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어 끝에 '충' 자를 붙여서 상대방을 벌레로 만들기 일쑤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노인들은 청년들을 향해 "자기밖에 모르는 것들" "고생은 해보지도 않은 것들이 돈은 펑펑 잘 쓴다"고 비난한다.
청년들은 노인들이 "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손쉽게 누릴 거 다 누린 사람들" "우리가 겪는 고통은 1도 모르면서 꼰대짓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낮은 가사참여나 남녀 간의 임금격차 등을 지적하고 나서면, 남자들은 여성할당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여성징병제를 국민청원에 올리기도 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지만 오히려 뒷간에 가깝다. 그만큼 지저분하다.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처럼 서로를 주저앉히기에 혈안이 돼 있다. 놀부 심보를 똑 닮았다. 나한테 유리한 얘기만 듣고, 상대방의 얘기는 듣지 않으니 소통은 없고, 소모적인 논쟁만 남았다.

선진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혐오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유럽에선 이민자를 향한 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은퇴자는 늘고,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이민자를 받아들였으나 지금은 부정적 측면만 부각시킨다.

혐오는 주로 힘없는 소수를 향해 발산된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를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소수를 배척해야 다수가 내 편이 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약자를 보호하라'는 말은 달나라로 떠난 지 오래다.

모두가 모두를 미워하는 세상에선 결국 모두가 피해자다. '가해자=피해자'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더 큰 문제는 혐오에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혐오가 반복될수록 더 강한 것을 찾게 되고,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혐오라는 불량식품에 중독되는 것이다.

혐오의 끝은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상대방 입장이나 생각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 저래"보다 "그럴 수도 있지" "오죽하면 저러겠나" 하는 말 한마디가 소중한 세상이다.


내가 미워하는 그 어느 집단에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보라. 나와 맞은편에 서 있는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혐오의 시대가 아닌, 공존·화합의 시대를 열 때다.
불량식품을 먹으면 언제고 탈이 나기 마련이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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